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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 호남 최초의 전킨선교사 연재 (6)초창기 한국사역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7.28 14:50
  • 호수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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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 -1908년 1월 2일)

한국사역을 위한 준비

전킨과 가족들은 1892년 11월 3일 제물포에 도착하고, 4일 목요일 아침, 북장로교 선교사 사무엘 마펫의 환영을 받으며 서울에 도착한다. 이들은 약 10개월 동안 서울에서 머물며 어학 공부와 제반 수련을 하며 남장로교 선교 담당지인 전라도 지방 선교를 위한 준비를 하였다.

1896년 군산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3년 동안 했던 선교 준비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궁극적 군산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며 선교부 후보지를 물색, 선정, 매입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에서 머무는 기간 동안 직접 목회 활동을 벌이는 것이었다.

전킨 일행은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에게서 1,500불을 주고 산집(선교사들은 그 집을 미국 남부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Dixie’라고 불렀다)에서 거주하며 한국 선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킨은 서울 선교사 공동체와 교류하면서 한국과 한국 선교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얻었다.

1893년 선교지 예양 협정(Comity Agreements)으로 미국 남장로교는 호남지역을 선교지역으로 분할받게 된다. 남장로교 선교부는 본격적인 호남 선교에 앞서 6월에 정해원을 전주로 내려보냈다. 정해원은 서울 출생으로 북장로교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어학 선생이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전주로 가서 은송리의 집 한 채를 26달러에 매입했다. 이 집은 장차 전주 선교의 거점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정해원은 남장로교 대리인으로서 선교사들이 전주에 내려오기 전 선교 전지 작업을 위해 투입되었고 실제 전주 거리에 나가 전도하기도 했다.

이 때 전킨은 개인적인 경사로 축하받기 바빴다. 1893년 6월 초 아들 조지(George G. Junkin)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해 9월 전킨이 호남선교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은 전킨 부인도 어느 정도 몸을 추스렸고, 한국어가 좀 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킨은 데이트와 전주 순회에 나섰다.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호남 선교를 위해 파송하여 전주에 정확한 정해원의 상황이 궁금해서였다. 이때 육로로 전주로 내려가던 길에 전킨은 늦장마로 인하여 불어난 개울물에서 목숨을 잃을 뻔하고, 숯불가스 중독으로 쓰러지고, 모기와 빈대에게 시달리는 고생을 하였다.

고생 끝에 전주에 도착한 전킨과 테이트는 전주에 2주간 머물면서 일단 정해원이 주택 매입에 성공했음을 알고 안도했다. 또한 정해원의 안정적인 전주 정착을 위해서 그의 집에 머물지 않고 여관에서 숙식하며 머물었다. 하지만 당시 바가지 요금을 경험하며 좋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 둘은 전주 읍성을 돌며 육안으로 자신들의 핵심 선교지를 돌아보며 호남 선교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였다.

1894년 2월 남장로회 한국 선교부 연례 회의에서는 호남 선교에 대해서 두 가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하나는 테이트 남매를 전주로 파송하여 전주 선교를 시작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레이놀즈 선교사와 드루(A. Damer Drew)의료선교사에게 6주간 전라도 순회여행을 지시한 것이었다. 호남에 설치할 선교부 부지를 물색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전킨의 한국사역 가운데 중요한 동역자 중 하나였던 드루 의료선교사는 일본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회의 결과로 테이트 남매는 전주로 이동하여 활동을 시작했고, 레이놀즈와 드루는 새로운 선교부 설립 후보지를 물색하느라 전라도 전체를 둘러보았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도보로 6주간 전라도를 둘러보던 드루는 항구의 중요성을 절감하였다. 드루는 해상을 이용하면 보다 효과적인 선교를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군산을 선교지로 선택하였다.

또한 전킨에게 호남 선교부의 선교부로 군산을 적격지로 추천하였다.

군산에서 사역이 시작되다

1895년 4월 전킨과 드루, 두 선교사는 한국인 안내자 1명, 요리사 2명과 함께 한 달간 군산에 머물게 된다. 이들을 통하여 군산 기독교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전킨과 드루는 기쁜 마음으로 1895년 3월 인천에서 배를 타고 군산에 왔지만 너무나 풍랑이 심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군산 어민들의 따뜻한 사랑은 전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우선 이들은 배가 닿는 선창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예배처소와 진료소를 차리기 위해서 수덕산 근처에 초가집 두 채를 50달러에 매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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