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2.1.22 토 21:25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동성애대책과 차별금지법반대(15)동성애에 대한 회개를 위한 설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6.24 14:23
  • 호수 520
  • 댓글 0

                                 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 소장)

Q 6 : 46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 냐?

헬라어로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첫 설교를 하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인 헬라어 프토코스로 설교를 Q 6 : 20로부터 시작하여, 무너짐을 뜻하는 단어인 프토시스로 설교를 Q 6 : 49까지 마치신 것을 사람들은 과연 알아차렸을까? 프토코스로 부터 프토시스까지 설교의 지평을 넓히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지만,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무너짐이 심하다고 말씀하신다.

산상(평지)수훈 설교의 결론부에는 예수님의 토라가 제시하는 예수님의 인격과 품성을 통한 말씀과 행위를 가장 잘 결합시키는 가르침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토라는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않느냐?”라고 안타까워하시면서 행함을 일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듯이 갈릴리 호수에서 주로 많이 하신 예수님의 토라에 대해서 주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가깝게 따르고 있다(약 2 : 14-26). 야고보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예수님의 토라를 찾아보면, 예수님말씀의 평행귀가 복음서 이외에서 야고보서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행동하는 가르침인 히브리식 디브레이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성지를 가보면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물고기를 먹고, 베드로의 배를 타면서 성만찬을 베푸신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로만 따르겠다고 다짐했는데,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하였으니, 그 얼마나 우리와 닮은 모습인가?

‘주여, 주여’라는 Q의 부름말을 흔히 ‘주여 3창’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주여 3창’이 유래된 구절로 가장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있이 있다. 다니엘 9장의 기도를 읽어 보라. 특히 다니엘 9 : 19의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 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 하소서,”에 ‘주여 삼창’이 나온다. 인간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행동을 촉구하는 간청이다. 그런데 인간의 이런 일방적인 간청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토라는 놀라우리만큼 인간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선다.

지체하지 않고 행동해야 할 자세에 관하여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 앞에 와서 “저도 수하에 병사들에게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나이다.”라고 예수님의 입에서 단 ‘한 말씀’이라도 명령하시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간청하는 백부장의 믿음이 떠오른다.

이는 일회성적인 말씀이라도 그대로 듣고 행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런 백부장의 믿음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선 산상(평지)설교에서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불순종하는 사람은 단지 반석 위에 집을 짓거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차원을 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그 삶이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멸망하여 음부의 권세에 사로잡힐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기에 올바른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제정하려는 “차별금지법”은 대다수의 국민을 역차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법이다. 이를 조장하는 문재인 정권은 내년 총선에서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인권으로 간주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악한 세력에 다호하게 맞서서, 하나님의 뜻이 바로 서도록 강력한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해가 진 저녁에 갈릴리 호수의 베드로의 배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