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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34)Ⅲ.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6.24 13:54
  • 호수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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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논설위원전 성결대 총장, 교수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19세기 성결운동

미국의 감리교는 이미 1738년 이후부터 뉴욕(New york)과 볼티모어(Baltimore) 등지에서 세워지고 있었으며, 웨슬리의 아일랜드(Ireland) 선교 당시 그의 설교를 통해 회심을 경험한 뒤 미국 뉴욕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필립 엠베리(Philip Embury), 바바라 뤼클(Barbara Ruyckle) 등 몇몇 이민자들에 의해 1768년에는 존 스트리트(John Steet)에 미국 최초의 감리교회가 건설되었다. 1784년 웨슬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감리교도들을 위해 영국 국교회 사제인 토마스 콕(Thomas Coke)을 ‘감리사(Superintendent)’로 안수하였으며, 평신도 설교자였던 프랜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도 감리사로 세울 것을 명령하였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웨슬리의 성결부흥운동이 미국으로 전파되면서, 웨슬리의 성화(聖化)의 교리는 웨슬리에 의해 미국으로 파송된 설교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초기 지도자들은 웨슬리가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역점을 두었다. 영국령 북미주의 최초의 감리교 설교자인 웹(Thomas Webb)은 성화의 필요성을 말하였으며, 애즈베리 또한 웨슬리의 성화론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감리교에서는 점차적으로 성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퇴조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감리교 부흥운동과 성화된 기독교인의 경험은 그 당시 교회 내에서 거의 용납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완전(完全)이 비감리교 부흥사들에 의해 선포되고 있음에도, 그 본거지에 해당하는 감리교 내부에서는 오히려 냉대를 받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감리교 내부에서 성화 교리에 대한 관심의 퇴조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는 감리『교리장정』 (Discipline)에서 웨슬리의 ‘기독교인의 완전’의 문구 삭제였다. 본래 감리교의 교리장정에는 이 문구가 포함되어 있어 설교자들이 이것을 반드시 설교해야 하였으나, 1812년부터 별책으로 출판한다는 이유로 이 문구를 교리장정에서 삭제하였다. 교리장정에서 ‘기독교인의 완전’이 빠지고 별책으로도 출판되지 않은 것은 이 교리가 감리교 내에서 강조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당시 감리교는 개척지에서 회심을 이루기 위한 복음의 일차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고, 이차적 양육의 측면을 무시하였다. 개종을 성취하기 위한 복음의 설교에 모든 전력을 쏟음으로써 기독 신자의 계속적인 양육이라는 측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감리교회에 재차 성결운동을 강조하는 조류가 형성되었다. 19세기 초에 일어난 성결운동의 시작을 명확하게 어느 해, 어느 사건으로 결론 내릴 수가 없으나, 1819년 메사추세츠(Massachusetts)에 있는 웰프리트(Welfleet)의 한 천막집회에서 놀라운 성결의 역사가 일어났다. 뉴 잉글랜드(New England)의 뛰어난 설교자로 알려진 메리트(Timothy Merritt)는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체험케 하였다. 그는 성도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받게 하고, 그 은혜 중에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다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가 1825년에 저술한 『기독교인 입문서』

(The Christians Manual: a Treatise on Christian Perfection with Directions for Obtaining That State)와 감리교 내 성결의 부흥운동을 위해 1839년 출간한 『기독교인 완전에 대한 안내서』(The Guide to Christian Perfection)는 이후에 발생할 성결운동에 대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첫 번째 이슈로서 미국 부흥운동의 전통 내에 고군분투한 새로운 세력의 현존을 알렸으며, 이후의 편집자들에 의해 감리교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성결부흥운동의 유력한 기관지가 되었다.

미국 감리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애즈배리(Francis As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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