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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77)여름의 맛, 감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6.23 16:10
  • 호수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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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저자)

숲이 깊어졌다. 나무나 풀이 가득 차서 이제 땅은 보이지 않는다. 깊다는 것은 무게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름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시절이다. 나무들의 (풀은 견딜 만할 것 같으니 제외하자) 인내가 한껏 고양될 철이다. 나무가 잎을 가득 매달고 신난 것처럼 혹은 왕성해서 싱싱한 젊음의 때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피곤한 시절이 여름이 아닐까, 비라도 내리면 나무의 무게는 상상할 수 없이 늘어난다고 한다. 어린 순이나 꽃이 솟아날 때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귀찮음을 훌쩍 건너뛰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딜 만했을 것이다. 감탄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에너지를 주었을 것이다. 감히 자기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꽃핀 나무를 바라보며 찬하 하니까, 올핸 봄비가 자주 내렸다. 그래선지 금방 숲은 어둑신한 그림자를 지니게 되었고 나무는 한껏 자란 나뭇잎들 때문에 무겁고 깊어졌다. 여름은 나무에게 힘든 시절이다. 
 감자를 씻는다. 감자가 살았던 땅속을 생각한다. 식물의 뿌리가 있고 돌이 있고 물이 있고 어딘가에서는 기름이 고여있을 그러나 어둠 속 땅. 수많은 나무를 품고 있는 땅, 땅은 참 무섭고 신기한 존재다. 난데없이 파타고니아의 땅속도 생각해본다. 그 동토의 땅에 끓고 있을 마그마를, 그런 땅속을 비집고 자라나 지금 내 앞에 감자가 있다. 감자 껍질도 생각해보면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다. 그 얇디얇은 껍질이 감자를 통째로 보호하고 있다. 감자 껍질이 가장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껍질이 커지면서 그 안에 감자의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굼벵이가 다가와 한입 베어 물때 그 주위는 금방 상하고 만다. 껍질은 다시 처음처럼 열 일을 할 것이다. 굼벵이가 먹은 주변을 껍질 자신으로 감싸기 위해, 아마 껍질이 없으면 감자도 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과일과 열매, 존재들이 그러하다. 사람도 껍질이 없으면 없다. 얇은 피부 아래 가득 고인 피를 생각해보면……. 그보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의 껍질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감자 껍질을 벗기지 않고 찐다. 그렇다고 무슨 원대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저 게을러서다. 그리고 색의 대비를 보기 위함도 있다. 압력솥에 씻은 감자 네댓 개를 담고 물을 아주 조금 넣은 뒤 굵은 소금을 살짝 뿌린다. 살짝! 나는 요즈음 이 단어에 꽂혔다. 얼마나 가벼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미묘한가, 얼마나 우아한가, 얼마나 아이처럼 조그만가, 굵은 소금은 살짝 감자에 내려앉기도 하고 물로 떨어지기도 한다. 감자의 간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자 기다리자. 열로 인해 압력솥 추가 소리를 낼 때까지, 식탁 위 읽을거리로는 신문이 좋다. 뭔가를 먹을 때도 신문이 좋다. 신문은 생각이 별로 필요치 않은 글이기 때문이다. 추가 돌기 시작하면 불을 약간 줄인다. 그리고 다시 조금 기다린다. 김이 완전히 빠지기 전, 추를 눕혀 김을 확 뺀다. 그때 감자의 껍질이 벌어진다. 하이얀 은쟁반이 아니고 다 먹고 난 우유 팩에 감자를 담는다. 우유 팩은 우리 집에서 아주 다용도다. 생선 씻기, 김치 썰기 등 도마로도 쓰다가 밥상 차릴 때는 상보로도 쓰이다가 당연히 감자 먹을 때는 쟁반으로 쓴다. 비닐도 최소 두 번은 써야 하는 사람이라 우유 팩, 그 좋은 종이류는 색이 변하고 칼자국이 많이 날 때까지 다시 쓴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아주 청결하면서 유용하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의 생명을 이어가게 해준 참으로 역사적인 존재 감자. 집게로 감자를 우유 팩으로 옮긴다. 감자는 길게 여기저기 길을 내고 있다. 껍질은 옅은 갈색이고 벌려진 사이 몸은 유백색으로 맑다. 나를 먹으렴, 실컷, 허락하는 자세. 껍질을 살살 벗기고 뜨거우니 수저로 퍼서 한 입.
 딱딱한 땅을 밀어내면서 자라느라 참 고생이 많았을 텐데 어찌 이리 부드럽다는 말인가, ?입안에서 감자의 분이 확 퍼진다. 감자의 독특한 냄새가 코로 스며든다. 향기는 모든 존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지만 특히 감자의 향기는 오롯이 감자 특유의 향으로 감자만의 풍미를 상승시킨다. 감자의 맛은 조촐하면서도 풍성하다. 달지 않지만 달고 짜지 않지만, 저만의 간을 품고 있다. 무자극의 선량함이 입안에 가득하다.
 유월의 맛이다. 순수한 여름의 맛이다.

감자꽃/윤금숙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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