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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팬데믹 시대, 신앙생활의 변화와 대책!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6.09 16:20
  • 호수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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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겪으면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져버린 인류가 하나님의 죄악에 대한 마지막 경고와 섭리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순위 이어야 함에도 각 나라마다 인위적인 경제지원과 예방백신에 의존하는데 정치력을 집중하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서민경제는 점차 몰락해가고, 변이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심리적 불안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삶의 질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내전이 속출되고, 국가 간의 전쟁 그리고 개인들의 폭력과 살인 그리고 과거에 듣고 보지도 못한 짐승 같은 행동들이 난무해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말세 현상은 성경에서 이미 예언한 바 있으며 인간의 죄를 회개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결론을 내려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의 생각과 기술과학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모면하기 위한 온갖 노력과 수작을 동원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해결책은 관심조차 가지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끝을 모를 불황이 덮치던 193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인스 학파’의 득세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 꿋꿋이 ‘자유 시장경제’의 가치를 옹호하면서 머지않아 국가경제 발전에 주류가 될 거라고 주장한 비주류 경제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이다.

그는 대학시절 스승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를 만나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에 대한 통제와 중앙은행제도는 궁극적으로 사회의 경제 불황을 가져온다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을 정립하여 발표하고, ‘케인스 학파’와 대립각을 벌리게 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왕성한 학술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정치적으로 ‘하이에크’는 주류경제학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스테그풀레이션’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작은 정부’를 주창한 ‘하이에크’가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드디어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결국 1980년대에 등장한 ‘레이건노믹스’ 그리고 ‘대처리즘’ 역시 ‘하이에크’의 이론에서 이어진 정책이다. 또한 그는 공산권의 경제 몰락을 예언하고, 소련이 경제적 문제로 분쟁하여 해체될 것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하나의 경제이론에서 시장의 자유와 권리를 소유하게 해야 경제발전이 된다는 원리에 있어서 정부가 통제로 일관하려는 인간의 독재권력은 하나님이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나 이 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공산주의와 독재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여 팬데믹을 격고 있는 이 시대에도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나 신앙을 이끌어가는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를 확실히 알아 회개하는 운동이 먼저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아낌없이 주는 봉사나 헌신을 강요하여 예배당에 모이게 하는 방법 그리고 선교사를 파견해서 해외선교의 영역을 감당하는 방법으로는 사명의 소임을 다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급격히 변하고 있는 세상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겠는가? 이 부분이 관심사가 될 것이다.

팬데믹 이전과 같이 대형교회를 건축하고, 모여드는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신앙교육을 유지하거나 전도를 하는 방법으로는 신앙성장을 기대하는 생각은 이제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이제는 미디어 영상을 활용하여 비대면 전도와 목양에 활용되고 있으므로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대명제이다.

누구나 영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신앙을 터득해야 하는 것과 영성훈련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과거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직접 스킨십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는 지나갔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 홀로 목양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야 한다. 거대한 교회건물은 용도변경이 필수인 것과 목회자 생활을 위한 이중직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급변하는 세상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변화를 극복할 교회들에 대한 목회방향을 바꾸려 하는 일에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피나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말세를 격고 있는 이때에 신중하게 이겨가면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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