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12.3 금 15:11
상단여백
HOME 교회 선교
서종표 목사, 호남 최초의 전킨선교사 연재(3)전킨의 교육환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6.09 16:14
  • 호수 519
  • 댓글 0
전킨선교사 1865년 12월 13일-1908년 1월 2일)

전킨의 교육환경
남장로교회는 국내외 선교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남북전쟁 후에는 7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해방된 흑인들에 대한 선교에 집중적으로 나섰다. 아울러 목회자를 배출하는 신학교육에 힘썼다.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교도 이런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였고 남장로교를 대표하였다. 한국에 온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의 상당수는 바로 유니온신학교 출신이었는데 전킨 역시 이곳에 1889년 8월 입학하여 1892년 6월까지 3년간 수학하였다.
 전킨은 브라질 선교를 염두에 두고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주일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을 대상으로 주일학교 사역을 하였다. 주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또 여름휴가 때는 각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다니는 등 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사적인 자질을 길렀다.

신학교 재학 중 두드러진 활동은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SVM)에 참여한 것이었다. 1886년 창설된 SVM은 선교사 지망생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각 교단 선교부에 연결해 주는 일종의 선교운동기관이었다. 국외 선교를 염두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전킨은 자연스레 같은 비전을 품고 있던 동기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였다.

 전킨과 레이놀즈의 만남은 레이놀즈가 유니온신학교 2학년에 입학한 1890년 가을 무렵인 듯 싶은데, 레이놀즈의 선교사 입문에는 전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레이놀즈는 전킨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들은 1891년 졸업을 1년 가량 앞두고 자신들의 국외 선교 파송을 위해 SVM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1891년 10월 테네시주 내쉬빌(Nash-ville)에서 개최된 ‘신학교 선교동맹’(Inter-Seminary Missionary Alliance)의 제12차 연례대회였다.

19세기 후반 대부흥운동 이후 미국 사회에 불어 닥친 해외선교 열풍을 경험하며 일찌감치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한 전킨에게 있어서 SVM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말할 수 없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처음 브라질 선교를 염두에 두었던 전킨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 선교로 마음을 돌린 상태에 있었다. 바로 그 내쉬빌에서 한국이 성큼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쉬빌은 종교의 도시로 동서남북을 불문하고 많은 교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더욱이 미국 남장로교 총회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 도시였다. 또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월간 잡지 『다락방』의 출판사가 있는 곳이었으며, 각 교파의 출판사마다 내쉬빌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내쉬빌을 방문하였다.

한국선교를 꿈꾸다
1891년 10월 레이놀즈, 존슨과 함께 유니온 신학교의 대표로 내쉬빌 대회에 참석한 전킨은 그곳에서 북장로교 한국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안식년을 맞이하여 귀국한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당시 밴더빌트 대학 신학과 학생이었던 윤치호의 감동적인 연설을 듣게 된다. 윤치호는 일찍이 서양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일본에 건너가 일본 동경에 있는 게이오대학에  입학하여 신문학을 접하고 귀국한 인물로서, 하루 속히 한국도 미국의 기독교 문화를 접하는 것이 근대화의 길임을 인식하고 보수 세력을 타파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세력들이 나라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인물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