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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스페이스 바·백스페이스 바 공존 = 총회, 내 입장 편·반대 입장 편 공존추석 명절을 앞두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설친다. 잠깐 잠이 들더라도 꿈속에서 선릉역 앞 총회본부 건물이 떠오르고, 교단 내 수많은 갈등들을 신경 쓰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이들을 좇아서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꿈을 꾼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10.0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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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앞두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설친다. 잠깐 잠이 들더라도 꿈속에서 선릉역 앞 총회본부 건물이 떠오르고, 교단 내 수많은 갈등들을 신경 쓰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이들을 좇아서 분주하게 뛰어 다니는 꿈을 꾼다. 제3의 시각에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당사자들은 어떨까?

문준경전도사의 영화 상영 및 CBS 드라마 제작을 통한 성결교단 위상의 강화와 제2회 성결교육인의 밤에서 볼 수 있듯이 BCM교육목회 브랜드 가치 상승 등의 긍정적인 흐름과는 달리 성결원 사건과 전 헌법연구위원장 소환 사건, 그리고 총회 헌법 대폭 개정의 문제점 부각, 또한 총회장과의 불화설 및 부총회장과 총무의 불화설, 그리고 교역자공제회 이사 선임 사건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사건도 드라마처럼 전개되어 ‘기성사’ 이야기가 등장하는 풍자소설 ‘무림지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갈등은 대안이 제시되어 풀려야지, 마냥 싸우면 한쪽은 깨지게 된다. 그동안 교단에서 중심 언론의 안방을 차지하던 사람들이 변방에 소외되어 있던 이들의 다른 이야기도 들을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 밤 꿈속에서 소천하신 아버지 故 양용주 목사께서 “컴퓨터 키보드가 스페이스 바만 있으면 오타가 나도 마냥 앞으로 가야 하기에 수정을 할 수 없다”며 “반대편으로 다시 되돌리는 백스페이스 바가 있으면 오타를 고칠 수 있단다”라고 말했다. 생전에 열심히 컴퓨터를 가르쳐 드렸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깜짝 놀라 깨어 새벽 기도를 하며, 교단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교단 중심에 있는 분들도 스페이스 바만 귀하게 여기지 말고, 백스페이스 바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고 말했다. 주류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소수의 다른 사람의 의견도 교단을 사랑하는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기만이 옳다는 것은 해석의 오류다. 예컨대, 성경 해석을 여러 사람이 했을 때, 누가 더 해석의 권위가 있다고 판정할 수 있는가? 데리다는 “권위를 주는 해석은 사실은 자의적인 것”이라며 “자신이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국 트렌취 감독은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치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찌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궤 딱지만한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똑같은 사실을 해석하는 눈이 다르다.

결국 해석학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자기에게 누가 의미를 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인생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유물론자가 자살하는 이유는 삶에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하비는 “신념화된 자기 고집의 세계관으로 보면 사실에 대해 왜곡시킬 수 밖에 없다”며 “충분한 증거 없이 믿는다는 것은 불안하므로 실증주의적으로 신념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언론계에서는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누구의 해석에 권위가 주어지는가가 중요하다. 본래 성경 저자인 하나님의 의도를 잘 해석한 사람이 권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정신을 살리는 편’이 옳게 판단하는 것이다. 이 정신에 입각해 죄의 문제를 인간적인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 추석 명절에 불면에 시달리면서, 스페이스 바가 백스페이스 바를 없앤 키보드 때문에 감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죠지 뮐러는 “감사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한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다.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이 모여 즐기는 날이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에서 교단 경쟁력 1위인 교단이 감사거리가 넘쳐야 한다. 그러려면 스페이스 바가 백스페이스 바를 뽑아 버려 볼품없는 키보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어로 “감사합니다”를 “멜시 뽀쿠(Merci beaucoup)”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잘못 듣게되어 “멸치볶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기만 해도 프랑스 사람들은 알아듣고 서로 웃는단다. 교단이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추석 명절 전후로 서로 웃어 보자.

스페이스 바가 오타를 줄이려면 백스페이스 바에게 “감사하다”며 수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아량을 베풀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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