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          (제일교회 담임)

‘윤대녕’님의 『칼과 입술』(출판:마음산책)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기장 대변항에서 해마다 열리는 ‘멸치 축제’에 가본 적이 있다. 기장은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에 속한 지역이다. 새벽에 멸치를 잡으러 나갔던 배들이 아침에 항구로 들어와 그물 터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부들의 힘찬 노랫소리와 함께 어부들이 부르는 그 노래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기타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물털이를 할 때만 부르는 이른바 <멸치 어부가>였다.

그물털이를 하는 주변에는 온갖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처럼 구경삼아 와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멸치와 관계된 사람들이었다. 어촌계 직원, 경매인, 식당 주인 그리고 개별적으로 멸치를 사러 온 사람들. 어부들이 그물털이를 하는 동안 그물 밖으로 튀어나온 멸치들을 열심히 통에 주워 담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한테나 허용된 것이 아니었다.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슬쩍 물어보니, 그들은 가난한 토박이 시장 장사꾼들이란다. 대개는 할머니들로 가판대에 앉아 손님에게 고작 천 원, 이천 원을 받고 한 그릇씩 멸치를 담아 파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그 사람들만이 멸치를 공짜로 주워 닮을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살라는 어부들의 배려였다. 그 지방의 오랜 풍습이자 전통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속인가?

짧은 글을 읽으며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이 이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배려하고 돕는 모습, 사실 우리네 삶 속에서 이런 모습이 예전에는 참 많았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은근히 배려하고 모르는 척 돕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런 모습이 사라져갔습니다. 조그마한 이익도 자기 것으로 챙기려 하고 그래서 양보도 돌봄도 없어진 세상이 점점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고 살라는 어부들의 배려였다.

성경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9-1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의 터전을 주시며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소출의 때, 가난한 이웃과 외부인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귀한 말씀이 아닌가요? 또한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8-29)” 저는 이 말씀을 어려서 읽다가 훗날 담임목회를 할 때 꼭 실천해 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했으니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매 3년마다 교회 예산의 십일조를 무조건 떼어 가난한 이들과 어려운 이들을 집중적으로 돕는 것을 정례화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담임목회 7년 차, 그리고 아직도 어려운 형편의 교회이다 보니 이 일을 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서서히 이 일을 준비하고 실천해 보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이 말씀을 실천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서인지 작가의 글을 읽고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순종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였음이 부끄러워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실천해 본다는 것,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교회가 먼저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이렇게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자본이 자본을 만들고 베풂이 미덕이 아니라 소유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이기에 참 바보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렇게 해나간다면 그나마 우리 사회에 조금은 사람 냄새가 나고 복음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밭 모퉁이를 조금 남겨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그것 없어도 삶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매 삼 년의 십일조를 구별해서 사용해보는 교회가 나올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할까요?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봅시다. 당장 눈앞에 어떤 변화가 없다 할지라도 그냥 우리니까 한번 그렇게 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니까요!

(유트브 채널 " 책 읽어 주는 키다리 목사"에서 영상 제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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