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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욕심내지 마세요!감옥에 갇혀 있어도 양심과 심령은 자유가 넘쳐난 것은 예수님 때문이다. 바울의 자족은 지금의 형편을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자족이 아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한 자족이었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9.2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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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에 개입·신성한 성결성을 흔들어

일부 정치장로, 거룩한 헌금에서 손떼야

인간은 욕심에 가장 약한 존재이다. 사람이 욕심을 제어하고,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세상 살기가 훨씬 수월할지 모른다. 국어사전을 보면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고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욕심은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은 욕심을 채우면 채울수록 천박해지고 본래의 이미를 상실해 간다. 사단이 인간을 유혹할 때 던진 미끼가 무엇인가 하면 욕심이다. 욕심에는 장사가 없다. 욕심이라는 병에 걸리면 반드시 죄를 짓는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작금의 성결교회 일부 정치 장로들의 행태를 보면, 저들이 정말 주님의 십자가를 체험한 장로들인가,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이권에 개입해 신성한 성결성을 망치고, 성결교회를 아름답지 못한 교단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를 보면, 바로 자신만을 생각하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욕심을 제거해 내야만 한다. 신앙인이며, 인격자는 남의 조언과 권면에 귀를 기울이지만, 화인 맞은 자는 도리어 화를 내고 지적한 자를 죽이려 궁리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아신다는 사실이다.

현자는 ‘남이 충심으로 한 말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누가했느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욕심의 마지막은 불행입니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욕심을 과감히 거부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욕심은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미국 미시건 대학의 스테파니 부라운 교수는 욕심과 수명이라는 글을 보면 인간의 수명이 욕심과 절대 관계가 있다. 사망률을 1로 보았을 때 욕심이 많은 사람은 사망률이 1.2위였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0.43이었다.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 시대에 욕심이 아니라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욕심은 다툼의 시작이다. 사람들의 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욕심은 우리 마음을 검게 때우는 다툼의 불꽃”이라고 했다.

일부 정치장로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헌금에 욕심내지 말기를 당부한다. 시골 할머니, 순진한 고사리 손의 어린아이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에 욕심 내지 말라.  

욕심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인 조스 마이어는 “단순한 기도가 주는 기쁨”이라는 책에서 밝히기를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받지 못하는 제일의 원인은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라고 했다. 욕심은 이렇게 우리를 어둡게 하고, 어렵게 하고, 어리석게 만든다.

바울은 분명하게 밝혔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자족이라는 말의 참 뜻이 무엇인가? 자족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우타르케스, autarkes)라는 말인데, 이 말이 본래 스토아 철학에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형편이었을 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만족한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바울은 스토아철학자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자족이라는 말을 썼다. 그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나는 평안하고 자족한다고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신앙의 핵심은 예수사상이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어도 양심과 심령은 자유가 넘쳐난 것은 예수님 때문이다. 바울의 자족은 지금의 형편을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자족이 아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한 자족이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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