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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42)오경의 주요 내용: 창세기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1.04.21 18:06
  • 호수 514
  • 댓글 0

 

서울신대 제13대 총장, 동 대학 명예교수

오경의 내용 (창세기)

2) 창조 사역의 구조

창세기 1장 전체에 계속으로 나타나는 똑같은 문장의 구조가 있다. 이것은 아주 단조로우면서 창조의 초월을 나타내는 효과적 표현이 된다.

a. 명령의 서론 :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1:3, 6, 9, 11, 14, 20, 22, 24, 26, 29)는 “그리고 그가 말했다”(Wa-Yomer)의 한국적 표현이다. 이것은 말씀으로서의 창조를 뜻한다.

b. 명령

“있으라”= 존재의 선언(1:3)

“생겨나라”= 파생의 선언(1:11, 20, 22, 24)

“...하게 하라”= 발전의 선언이다. (11:9, 17)

모든 사건의 기원은 명령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우주 만물의 기원도 하나님 명령에 의해, 출애굽 해방 사건도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모세에게 주어진 명령에서, 소급해서 아브라함의 신앙 사건도 “ 본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창조 사건에서 계속된 명령은 모세나 아브라함과 같은 수신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서 그 독특성이 있다. 사실 수신자가 없는 명령은 불가하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창조 명령은 하나님의 창조 사건이요, 하나님의 영역이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선 너머에 있는 것이다.

c. 완성 :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절대적 권위가 있다.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말씀은 헛된 것이 없고, 사건을 일으키고 결과를 낳게 한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이요 의지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간직할 때 창조적 기적이 일어난다.

d. 판단: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모든 창조 사건 뒤에는 항상 이 판단이 내려지고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고 말한다. 이 ‘좋았다’는 말은 만족, 행복, 선함과 충족에 대한 최후의 말이다. 이 ‘좋았다’는 말은 어떤 객관적 판단이나 전통적 기준에 따라 평가된 것이 아니라, 지금 완성되고 있는 목표에 부합되거나 적절하다. 즉, 자체의 목표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하나님 자신의 창조 작업에 대한 만족을 표시한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웠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헬라적 미적(美的) 개념인 존재의 상태에서 이해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약성서에서의 아름다움은 본래 사건을 의미한다. 즉 어떤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아름다움, 즉 만남에서(Encounter) 느끼는 체험이나 창조된 것들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요 기쁨이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면 그 기쁨은 극치의 아름다움이요 행복이요 찬양의 사건이 된다.

e. 시간 관계: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하루였다”

저녁과 아침은 창조일 들의 중간에 있는 것으로 히브리인의 계산법을 따른 것이다. 한 날은 해 지는 때로부터 계산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깊게 볼 것은 하루에 빛이 있는 낮에만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이 있는 밤시간, 즉 저녁과 아침 사이에는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암시이다.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빛 가운데 행하신다. 이 “날”의 길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3) “날”의 해석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Y󰔅m은 구약에서 1,480회 이상 사용되고 “날, 시간, 생활, 오늘, 세대, 영원, 계속, 기간” 등 50여 종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며, 가장 단순한 의미는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a.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A Literal 24 hour day) - 오늘날과 같은 하루로 보는 견해이다.

내용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어의 일차적 뜻을 따라야 한다. 모세 시대의 기록으로 인정한다면 그 저자가 당시의 시간 개념을 적용시킨 하루로서의 ‘날’이란 단어를 썼을 것이다.

b. 하루(날)는 한 시대, 긴 세대를 의미하는 학설이다(Day-Age Theory).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하는 하루는 상징적 표현으로 한 시대와 다른 한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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