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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규 선교사의 해외선교지 소개 - 태국 치앙마이 ④박 선교사는 방콕의 언어학원에서 1년 동안 태국말을 공부한 후 태국의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로 자리를 옮겨서 산부족들 중 하나인 라후부족의 언어를 또 다시 공부하면서 전도대상 마을들을 선정하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며 라후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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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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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선교의 역사 (2)

성결교단의 태국선교는 이미 이루어져 있던 므앙타이교회에 1981년 2월에 박희성 선교사를, 같은 9월에는 홍성철 선교사를 각각 파송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홍 선교사는 이전에 벌써 서너 차례 태국을 방문하여 므앙타이교회의 신자들을 제자 훈련시켰던 적이 있었지만 성결교단의 선교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은 1981년도부터였습니다. 박 선교사는 처음에 태국어를 배우며 므앙타이교회를 중심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홍 선교사가 온 후에는 사역지를 옮겨서 반프랐크릿교회와 함께 일하다가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1983년에 홍 선교사가 태국을 떠날 때 당시에 방글라데시에서 선교하다가 비자문제가 걸려서 잠시 태국에 머물러 있던 송희천 선교사를 교단 선교사로 영입하여 태국에서 일하도록 했는데, 이때에는 므앙타이교회의 난타차이 부부가 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므앙타이교회를 맡게 되었고 송 선교사는 므앙타이교회를 중심으로 성가대와 성극을 지도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당시 성극을 통한 선교는 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서 공영 TV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교지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훙 선교사 때부터 구상된 신학교의 건축계획을 계속 추진하여 므앙타이교회와 함께 장소를 마련하는 등 기본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송 선교사는 태국에서 4년 동안 일한 후 1987년에 안식년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면, 1986년에는 이영기 선교사가 파송되어 태국말을 공부하면서 사역 준비를 하다가 1987년부터는 전도 및 교회개척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특별히 므앙타이교회와 협력하여 태국 십자군을 창설하고 교회개척 사역을 전개해 나갔는데, 이 사역은 KEHC와 OMS가 협력하여 지원한 사역이었습니다. 1988년도에는 이용우 선교사가 추가로 파송되어 태국말을 공부하고 1989년 7월에 개척된 남펀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을 세워 놓고 사역을 지도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10월부터 돕다가 다음 해 곧 1990년 6월에는 롱니란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을 세워놓고 사역을 지도해왔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10월부터는 그 동안 신학교의 학장으로 일하다가 유학을 준비 중에 있는 난타차이 목사를 도와 신학교 학장의 중책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91년 12월부터는 현지 목회자의 영적 재충전과 재교육을 위하여 므앙타이 신학교 부설기관으로 <목회자 훈련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년 25명의 목회자들을 선발하여 매월 첫째 주간에 합숙훈련을 시키면서 1년간 집중교육을 받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1989년 8월에는 태국 북부의 산부족 선교를 위하여 박윤식 선교사가 증원 파송 되었습니다.

 

박 선교사는 방콕의 언어학원에서 1년 동안 태국말을 공부한 후 태국의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로 자리를 옮겨서 산부족들 중 하나인 라후부족의 언어를 또 다시 공부하면서 전도대상 마을들을 선정하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며 라후부족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선교하고 있는 라후부족 선교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후 1993년 김동호 선교사가 라후부족 선교사로 사역을 하였고 곧이어 이형국 선교사가 라후부족을 위해 1993년 11월에 파송되어서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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