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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Life죽비소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4.07 16:13
  • 호수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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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영 목사  (기성 제일교회)

‘정민’작가의 『죽비소리』(출판:마음산책)에서 일부를 옮기며 상념에 젖어봅니다.
눈도 밝고 두 손도 멀쩡하면서 게으름 부리기를 즐기는 자는 툭하면 ‘消日소일’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한다. ‘소일’ 즉 ‘날을 보낸다’는 두 글자는 ‘惜陰석음’ 곧 ‘촌음을 아낀다’는 말과는 서로 반대가 되는 크게 상서롭지 못한 말이다. ‘소일消日’이란 말 그대로 날을 소비하는 것이다. 빈둥거리며 하루를 때우는 것이다. ‘석음惜陰’은 촌음寸陰의 짧은 시간도 아낀다는 말이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으니 짧은 시간도 아깝기 짝이 없다. 특히나 젊은 날의 시간은 금보다 귀하다. “아유, 심심해. 뭐 좋은 건수라도 없어?” 젊은 사람이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뒤통수가 뜨끈해지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야 한다. 내가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소일消日’이라는 말을 기독교인들도 경계 해야 합니다. 일의 결과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을 때 쉽게 흘러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하나님 뜻이 아닌가 봐!’라는 단어입니다. 일의 준비와 과정 그리고 노력과 집중 등을 통해 다음 단계를 위한 교훈을 찾는 것보다 자기 합리화처럼 들리는 이 말과 함께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무책임하고 끈기와 인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물론 남다른 노력과 투지로 정상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노력과 분투보다는 자기 합리화와 안일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기 쉬운 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삶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로 팔려 간 혈혈단신(孑孑單身)이었던 소년 요셉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빗자루질, 물 긷는 일 등 허드렛일이었을 것입니다. 소년 요셉은 눈치나 보며 시간을 죽인 사람이 아닙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했던 그는 마침내 보디발의 집안일을 모두 관장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고 급기야 애굽의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어 내는 기틀을 만들어 하나님의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가축 분뇨와 풀들이 묻어 있는 다윗의 외모가 아닌 중심에서 이스라엘의 왕 될만한 자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위대한 왕 다윗은 어떠합니까? 사무엘이 기름을 붓기 위해 이새의 자녀들을 만났을 때 모든 형은 집에 있었습니다. 형들의 외모는 모두 왕이 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목장에서 양과 소의 분뇨 냄새가 풍기고 마른 풀들이 묻어 있을 다윗에게서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셨습니다. 집에서 ‘소일(消日)’이나 하는 형들이 아니라 목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사자와 곰의 발톱이 주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에게서 이스라엘의 왕 될 만한 사람의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런 열심과 성실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밭을 좋은 밭으로 만들고 있는 다윗에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허락하셔서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건(삼하 11장의 내용)은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고 죄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다윗은 전장에 병사들과 함께 나아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 소일(消日)하며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범죄에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삶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터전을 길가 밭으로 아니면 엉겅퀴가 무성한 잡초밭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돌짝밭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촌음(寸陰)을 아끼며 포기와 무력함이 아닌 좋은 밭으로 일구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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