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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창문 칼럼(52)주님 뜻에 순종하여 목회 하고 있는 박승범 목사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1.03.31 18:33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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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960년대 초반의 생활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피폐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먹고 살기에 녹록지 않았다.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형적인 후진국으로 혼돈의 세상이었다.

시골 농촌 다수의 자녀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정형편 때문에 육성회비를 제때 못 내어 조회 때마다 담임교사에게 출석부로 머리를 맞고 교실에서 쫓겨났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초기부터 지금까지 목회자의 길을 걷기는 쉽지 않았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봉천리에 위치한 임실봉천교회를 담임했던 박영완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박승범 목사는 농촌교회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목회자이다. 당시 아버지 박 목사는 전주 안디옥교회(깡통교회) 이동휘 목사를 통해 개척분립 차원에서 임실봉천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곳 농촌 교회에 한 명의 성도도 없이 9명의 식구들을 이끌고 목회 사역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개척교회의 실정은 마음 편안하게 목회하지 못 하게 하였다. 심지어 식구가 많은 것을 감추기 위해서 성도들이 사택에 온다고 하면 형제들이 신발을 들고 장롱에 숨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과 전도, 기도를 통하여 목회의 길을 달려가던 아버지 목사님은 사역의 고통이 너무 힘드셔서 57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가셨다. 이러한 농촌교회 목회자의 슬픈 현실을 목격한 박승범 목사는 내 평생 절대 목회만은 하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박 목사의 어머니는 늘 아들을 위하여 야곱의 복을 받으라고 기도해 주셨다고 한다. 생존하시는 어머니 평생의 기도가 응답이 되어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에 순종하여 당시 형제가 동시에 입학하면 한 사람은 등록금을 면제받을 기회가 있어서 신학의 길로 들어가 형님과 함께 총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신학교는 졸업하였지만 분명한 목회 소명감을 갖지 못한 박 목사는 사회의 길로 들어가 규모가 큰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곳에서 누구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을 영위하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것을 거스르고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던 끝자락은 어두운 그림자를 만나보고야 깨달았다.

박 목사는 고향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신실하고 언제나 교회를 섬기는 마음이 최고였던 예쁜 자매와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결혼하였다. 사모는 결혼하고 인생의 반려자로 주님이 허락하신 동역자라며 개척의 결단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련의 과정을 함께 했다며 감사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뼈아픈 사연들이 있다. 아버지의 힘든 목회가 싫어서 신학교는 졸업하였지만, 사회생활에 깊이 빠져들다가 하나님이 주신 딸과 사별한 사건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사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 목사의 가정이 주님 뜻에 순종하고 목회의 길을 걸어왔더니 지금 가장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며 이제는 가정도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녀들에게는 주님을 사랑하고 언제나 교회 중심, 예배와 기도를 쉬지 말라고 권면한다고 한다. 박 목사는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가정이 진정한 삶의 행복한 가정이라고 고백한다.

박승범 목사는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부교역자로 성도를 섬기며 심방을 통해 신앙적인 관리를 하고 주님께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물론 새벽예배 한 번 빠짐없이 3년 내내 즐겁게 영적인 봉사를 하며 소유했던 물질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다. 시화 충현교회 부교역자 시절, 당시 대지를 매입(2,200평)하는 시기여서 생활비를 거의 못 받아 아들이 학교 갈 차비조차 없는 고난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눈물의 씨앗을 뿌린 것에 대한 열매로 감사하게 여긴다고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니 단독 목회할 기회가 왔다. 충현교회 담임목사와 성도들의 기도와 배려로 2009년 3월 28일에 상가에서 10여 명과 함께 개척 예배를 드리고 목회 사역을 시작하였다.

박 목사의 목회비전은 교회의 이름처럼 첫째, 시편 16편 3절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는 말씀과 같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 믿게 하여 존귀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역대상 4:9~10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는 말씀처럼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된 것 같이 예수를 믿어서 이 땅에서 야베스와 같이 존귀한 자 되게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존귀한 성도들이 예수를 믿었으니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당당하게 서게 하는 것을 목표로 신앙지도를 하면서 오직 예배, 전도, 기도의 생활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전하며 복을 누리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존귀한교회가 새롭게 리모델링을 마치고 입당 예배를 드린다. 담임 목회자의 눈물 나는 과거의 삶이 녹아 지금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은 공짜로 된 것이 아니다. 어려웠던 1950-60년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 목회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씨앗과 박 목사가 걸어온 발자취 속에 서려 있듯이 섬기고 희생하며 모든 힘을 다해 물질까지 모두 드린 열매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자발적인 기도와 전도,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과 물질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6층 전체를 매입하도록 하였다.

지금까지 입당 예배를 위해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의 수고와 모든 과정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바라기는 존귀한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앞날에 아브라함, 야곱, 요셉의 축복이 가정과 자손들에게 더 크게 열매 맺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교회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이 지속되면서 전례 없이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우리에게 있는 것에 감사하자. 힘들고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나부터 눈물의 씨앗을 뿌리며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더욱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충성한다면 때가 되매 생명의 면류관과 천국의 상급을 받게 되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한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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