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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근원시대와 문화를 떠나 인류에게 있어서 존재의 근원에 관한 질문은 무한소급된다.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를 비롯한 자연 세계의 근원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모두에게 요청되는 질문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9.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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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문화를 떠나 인류에게 있어서 존재의 근원에 관한 질문은 무한소급된다.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나를 비롯한 자연 세계의 근원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모두에게 요청되는 질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당시 사유실험의 기초가 되는 질문은 근원, 본래적 존재에 대한 물음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다자(The Many)'와 ’일자(The One)'의 관계를 논하면서, 사물이 존재하는 원인은 물(Water)이라고 말한바 있다. 더 나아가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는 질료 가운데 가장 순수한 힘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정신 즉 ‘누스(Nous)’가 있다고 말했다. 이 누스는 그 무엇과 혼합될 수 없는 순수한 것이었다.

이처럼 ‘존재의 근원’ 혹은 ‘신(神)의 존재’에 관한 질문은 영원한 인류사의 과제였다. 이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진다. 그는 사물의 본성을 이루는 제 1원리 곧 ‘부동의 동자(The Unmoved Mover)'를 언급했다. 이는 자신은 결코 움직이지 않지만, 다른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본 것이다.

 

신 존재 증명

그 후 본래적인 존재로서 신(神)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인 증명을 시도했던 노력은 중세 시대에 절정의 꽃을 피운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신학대전』에는 신의 존재에 대해 5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운동에 의한 증명“이다. 모든 사물은 운동하고 변화한다. 어떤 사물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움직이게 하는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것에 의해서도 움직여지지 않는 제 1의 움직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둘째, 작용인(作俑因)의 근거에 기초한 증명이다. 사물의 원인이 있기 위해서는 그 원인 앞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사물은 스스로 작용인이 될 수 없다. 오직 신만이 스스로 작용하여 다른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필연성에 의한 증명이다. 어떤 나무가 우연히 살아 있는 때가 있고, 소멸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생성과 소멸은 필연적이다. 철수가 태어나는 것은 우연적일 수 있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 필연성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필연성을 소유한 어떤 존재가 바로 신이다.

넷째, 완전성에 의한 증명이다. 모든 사물에는 보다 많거나 적은 것 혹은 보다 선한 것이거나 참된 것의 비교가 되게 마련이다. 어떤 사물이 아름답지만,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가 있게 된다. 결국 '최고의 선(summum bonum)'의 경지에 도달하거나 완전성에 도달하는 존재는 오직 신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목적에 의한 증명이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다. 모든 자연물이 목적에 의한 질서를 갖추고 운행한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의 목적을 부여하고, 또 그 목적이 되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비록 위와 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이론적인 형태로 설득력 있게 전개했지만, 완벽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주권자 하나님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자연을 운행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고(신 11:14),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다(시 136:8). 뿐만 아니라 들에 핀 백합화는 우리가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마 6:28).

우리는 가끔씩 장엄한 폭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연적 질서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산물이 아니다. 본래 주어진 것이고, 그렇게 저절로 운행되어져서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이 붉게 물든 자연의 부스러기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 사색의 장(場)을 만들어보자. 이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섭리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소중한 가을의 추억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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