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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대책과 차별금지법반대(6)동성애에 대한 회개를 위한 설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3.31 17:15
  • 호수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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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장)

Q 3 : 17 그는 손에 키를 잡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세례 요한의 설교는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끝나지 않는다. 강력한 심판과 진노의 설교 이후에 히브리어로 테슈바 곧 회개의 설교가 이어진다.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진노만이 아니라, 회개의 설교를 한 것은 율법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은혜의 시대가 동터 온 것을 알리는 새로운 복음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테슈바는 동성애에서 돌아선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동성애와 같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용서를 구하는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린도후서 6:1-2). 이것은 벤 아브라함과 바트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부를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하실 것이다. 헬라어 하마르티아 곧 죄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간 것에 비유한 것이라면, 테슈바 곧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180도 돌이키는 행동이다.

아브라함 시대에 마리 왕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번창하였지만, 바벨로니아의 함무라비에 의해 파괴되었다. 아무리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운 왕이라도 역사에 남은 것은 파괴된 잔해뿐이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는 헛된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오늘날 교회에도 잠입하고 있는 동성애 문화에 경종을 울린다.

아리스토델레스는 시학(헬라어 원제목은 페리 포이에티케스)에서 하마르티아를 판단착오로 이해하여 인간이 불행을 맞는 것이라고 했다. 동성애가 판단착오로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동성애와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인류 최초의 문예비평인 ‘시학’은 므네메시스인 모방과 카타르시스인 감정을 통하여 그리스 신화를 평가한다.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에로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후천적 모방이고, 또한 오이푸디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다분히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오이디푸스에게 적용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마르티아는 ‘죄’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원래 헬라어에서는 ‘판단착오’나 ‘시행착오’ 혹은 ‘과오’나 ‘과실’을 의미한다. 곧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하는 비극문학의 핵심을 모방과 감정이란 방법을 통하여 인간의 동성애와 성적인 욕망 그리고 판단착오로 맞이한 비극을 보여준다.

이렇게 탐욕과 성적인 욕망에 속아서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굴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는 판단착오를 보여준다.

왜 하나님의 밭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서 자라고, 마지막 타작마당에까지 함께 뒹굴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곡 스스로가 심판의 기능까지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곡이 밭에서 자랄 때 제 키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는 쭉정이가 햇빛도 부족하고 바람도 넉넉하게 불지 못하게 방해를 하다가, 마지막에 타작마당에까지 올라와서 뒤섞이는 상황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쭉정이가 알곡을 괴롭히는 상황은 거기까지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타작마당에서 예수님의 심판하시는 손에 키가 들려지게 될 때, 하나님의 심판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에 의해서 수행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시대의 마리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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