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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오스왈드 챔버스하나님의 부르심 (고린도전서 1:17)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3.17 16:41
  • 호수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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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1874-1917)

부르심의 목적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복음’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설교할 때 성화가 종국적인 목적인 듯이 강조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서 성화가 목적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높이도록 소임을 받았습니다. (요12:32).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성도로 만들기 위해 구속의 수고를 감내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구속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고스란히 바치기 위해 구속의 진통을 참으셨습니다.


궁극적인 영화
우리가 구속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구속의 실체력에 대한 한 예증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구속의 목적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간이라면 우리가 구원과 성화를 위해 청하는 온갖 요청으로 인해 진저리를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우리 자신의 축복을 위해서, 또 자신이 벗어나야 할 각양 각색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을 몹시 피곤케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의 실체를 밑바닥까지 살펴 보았다면, 다시는 개인적인 사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의 유일한 소망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상심, 환멸, 고난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확고부동한 헌신 가운데 영화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참여하는 것이 궁극적인 영화입니다.
억누를 수 없는 소명 (고전 9:16)


구원의 조건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지 않는지 조심하십시오. 구원받는 자는 누구나 그 사실을 증거할 특별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복음 전파에 대한 소명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 전파를 억제함으로써 자기에게 생기는 고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구도자들에게 바울이 말하는 복음 전파의 소명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받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오라 그리하면 내가 구원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구원의 조건으로 제자의 조건을 내걸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가 되는 일은 선택적이고 특별한 소명입니다. “만약 아무든지...”(막8:34)


하나님의 나팔수
바울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입장에서 한 것입니다. 종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주인에게 물어볼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쁘시게 하려고 우리를 떼어진 떡과 부어진 포도주가 되게 하십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롬 1:1)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부름을 어깨 너머로 듣게 되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고통이 시작됩니다. 모든 야망이 꺽이고 생의 온갖 욕구가 사라지며 일체의 전망이 닫혀 버립니다. 남는 것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택정되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일단 부르심을 받은 자가 딴 길로 들어서려고 행동하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로잡을 때 주의 손을 뿌리치게 하려는 경쟁자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나팔수가 되어 구령에 참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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