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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까지 R. J. 토마스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인식 형성과정(2)토마스의 인식 형성에 대한 오문환의 견해
  • 이은선 박사(교회사)
  • 승인 2021.01.14 21:58
  • 호수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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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안양대학교 신학과 교수 및 교목실장

그러면서 최상도는 순교라는 인식은 “그 죽음을 순교로 호명하는 후시대의 산 자의 사회적 행위”를 수행하는 공동체적인 해석적 힘의 작용에 대한 결과라고 지적하였다. 본인은 순교라는 인식이 그 시대적인 정황 속에 공동체적인 배경을 가지고 생겨난다는 최상도의 지적이 타당하다는 전제하에, 1920년대 중반 오문환의 토마스에 대한 순교 인식도 단순한 오문환 개인의 인식이 아니라 그 이전의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오문환 이전의 한국관련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는 토마스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형성해 왔으며, 그것이 오문환에 의해 어떻게 구체화 되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Ⅱ.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로스와 그리피스의 인식

토마스가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에 들어왔다가 이 배가 화공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소식은,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군함의 향도 역할을 했던 리델 신부에 의해 1866년 11월 초 북경에 알려졌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후 그를 조선에 파송한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 선교사는 이듬해인 1867년 10월에 만주를 방문하고 고려문까지 가서 토마스에 대한 소식을 수소문했다. 그는 고려문 방문기를 『조선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가진 북중국, 만주, 그리고 동 몽골 여행기』(Journeys in North China, Manchuria, and Eastern Mongolia with Some Account of Corea, 1870)에 발표했는데, 철저하게 무장하고 그들의 강에 들어왔던 제너럴셔먼호의 파괴를 언급하고 조선이 훌륭한 나라이나 쇄국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강제 개국이나 외교를 통한 개국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윌리엄슨의 안내를 받아 만주에 정착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로스(John Ross) 선교사는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1879년에 『고대와 근대 한국사』(History of Corea, Ancient and Modern)를 저술하였는데, 여기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기술하였다.

“제너럴셔먼호라는 미국 배–미국 국민인 배의 소유자인 선장과 친구, 영국 국민인 배의 화물관리인, 젊은 선교사인 토마스 목사(Rev. Mr Thomas), 한 명의 말레이시아 승무원을 태운–는 프랑스인들의 대학살에 대하여 들은 후에 지푸에서 평양강(Pingyang)을 향하여 항해하였다. 이 배는 네 번의 조류를 만나면서 거슬러 올라가 1866년 8월에 평양(대동)강으로 항해하였다. 모든 설명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치한다. 그 배는 높은 조류 속에서 강의 수로로 부터 벗어나 좌초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며칠 동안 친절하게 대우받았다. 그러나 서울에서 소식이 온 뒤에 그들은 강가로 유인되어 사형에 처해졌고 배는 포위되어 화공공격을 받았다.” 로스는 이 책에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수교된 것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이 수교가 “조선 국민을 위하여, 조선이 근대 사상들과 문명에 신속하게 문호를 개방하여 정당한 통치의 축복을 나누어주며 의와 평화의 종교를 소개하기를 소망하게 만든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로스가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애쓴 것은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복음을 전하려다가 안타깝게 죽은 사실을 알았던 것도 중요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선교사가 아니면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기록을 일찍 남긴 사람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목사이면서 동양학자로서 1870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대학의 물리학 및 화학교수로 있었던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이다.

그는 일본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영향을 주었던 조선에 관심을 가져 1882년에 『조선: 은둔의 나라』를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토마스에 대해 “지푸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게서 한국어를 배웠고, 중국 선박으로 황해에서 여행한 바 있는데 그의 언어 지식을 증진시키기 위해 승객으로 승선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모든 선원들이 익사되거나 참수된 것으로 보고되었다고 언급했다.

Ⅲ. 국내 입국 선교사들의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인식

1. 1909년 이전 국내 선교사들의 토마스에 대한 인식

국내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다음호에 계속>

이은선 박사(교회사)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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