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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32)제5편 한국성결교회 성장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1.01.13 16:32
  • 호수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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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재건기(1946~1950)

제1절 일제 탄압에서 해방

일제 하에서 35년은 피눈물을 흘리는 고난의 기간이었다. 더욱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서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뒤에도 한국 땅에서 최후 발악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을 더욱 무자비하게 박해하였다.

특별히 기독교에 대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수많은 교역자와 신자들을 우상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리고 신사참배에 불응하는 자는 바로 검거하여 체포하고, 모진 형벌을 내려 순교하거나 불구자로 만들었다. 어떤 이는 기한도 없는 징역살이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성전 안에 가미다나(귀신단지)를 벽에 걸어 놓게 하고, 예배드리기 전에 ‘황국의 명세’를 하게 하고, 일본 천왕이 있는 곳을 향해 ‘동방요배’도 강요했다. 그리고 일본말 성경을 읽고, 일본말 찬송을 부르게 하다 “구약성경을 못 읽게 하고 신약성경도 4복음만 사용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무쇠종까지 다 빼앗아갔다.

더 나아가서 교회로 하여금 전쟁무기 값을 강제 모금하게 하였고,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는 교계지도자들은 불순한 사상가로 몰아 1945년 8월 17일에는 모두 학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결교회를 4중복음 신봉의 이유로 교단을 강제 폐쇄했고, 타 교단 교회도 문을 닫기 시작한 상태에서, 전국적으로 농민들에게는 수확한 농산물의 공출을 시작하여, 먹고 살 여유를 주지 않고 빼앗아 가버리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집집마다 아우성치는 가운데 무기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놋그릇까지 수거해가고, 결국은 한국 성씨를 없애고, 일본 이름으로 개명해 버리면서, 언어도, 사상도, 글씨도, 모두 다 일본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지원병’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아들까지 빼앗아 가버려 온 나라가 꼴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 왜군들은 한국을 점령했으니, 역사와 겨레의 족보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감행하면서, 온 국민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도록 우겨 쌈을 시도하게 되었고, 이제는 막다른 골목까지 내 몰리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유엔 연합군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자 악행을 일삼던 일본군은 하루아침에 패망하고 35년의 지긋지긋한 압박이 끝이 나면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다.

당시의 감격은 3천만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눈물로 얼싸안고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한국의 자유를 힘차게 외치고, 기독교의 자유도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은 협상을 통해 38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국군이 통치하기로 결정하여 한겨레의 국경선이 내 나라 내 땅에 그어지는 비극과 함께 공산당과 자유민주주의가 대립하는 분쟁의 장소로 순식간에 바뀌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한에서 정치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어 기독교인들은 일본에 의해 무너진 재단을 수축하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들어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가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발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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