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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전염병을 이기는 길(12)하나님을 시험하는 사탄은 반드시 멸망한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2.31 14:36
  • 호수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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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 소장)

Q 4:12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인의 입국을 제한하지 못했다. 8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중국을 제외한 6개국의 외국인 입국자에게 핵산검사증을 제출하도록 뒷북처방을 내렸다. 전국에 공급된 얼굴인식 체온계가 모두 엉터리인데도 계속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원순의 자살로 막을 내렸는데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회복조치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성애의 괴상한 광란축제를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허락했다. 이 모든 책임은 문재인정부가 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강행처리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당하는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교회는 폐쇄되어야 하고, 소그룹모임이 금지된 것과 신앙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2월 13일에 전염병 감염자가 1천명이 넘어가자 또 다시 문재인정부는 방역을 3단계로 격상하겠다고 국민을 겁박했다. 지난 1년 동안 백신개발은 안하고, 정치방역만 하다가 세계최고 K방역을 자랑하더니 그 영한 방역이 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마귀는 속임수에 능한 자이다. 마귀에게 넘어가서 시험을 당하거나 판단착오를 일으키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학’에서 하마르티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오이디푸스에게 적용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마르티아는 ‘죄’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원래 헬라어에서는 ‘판단착오’ 나 ‘시행착오’ 혹은 ‘과오’ 나 ‘과실’을 의미한다. 곧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하는 비극문학의 핵심을 모방과 감정이란 방법을 통하여 인간의 동성애와 성적인 욕망 그리고 판단착오로 맞이한 비극을 보여준다.

참고로 로마서 8장을 읽어 보라. 키에르케고아가 실존주의 철학에 입각해서 설파하였던 것과는 달리, 결코 시험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비록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넘어질 수는 있지만(Knock Down), 완전히 실신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Knock Out)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사망에 이르게 하고, 멸망당하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그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생명까지도 온전히 내어주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고 지친 생명을 향해 항상 유효하시다. 포기하고 싶을 때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오직 예수님 앞에 나아가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자신의 생명을 천사에게 의탁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초의 순교자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성지순례를 떠난다. 성 야고보란 뜻을 가진 스페인어 산티아고는 예루살렘과 로마와 더불어 세계 3대 성지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한 베드로의 동생인 야고보는 바울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서바나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전염병으로 교회가 폐쇄되었고, 주일 성수마저 금지되고, 동성애로 신앙을 훼손하며 인권논리를 앞세워 신본주의를 부정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문재인정부를 반대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로부터 산티아고로 가는 길까지 고난의 연속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야고보와 같이 순교의 정신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그동안 정부와 여당에 굴복한 무기력한 신앙을 회개하고 무너진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유대광야의 엔게디에서 수업중인 이스라엘 청소년들은 다윗을 생각하지만,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억한다. 유대광야에 엔게디와 같은 폭포도 있어서 사울을 피하여 동굴에 몸을 숨긴 다윗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하시는 과정을 통해 미혹된 길에서 떠나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지 확인하려고 시험하신 것이다.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어린양 예수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동성애와 전염병이 창궐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불같은 시험을 당할 때, 참고 견디는 성도는 마침내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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