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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43)사람과 나무는 상방지향성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12.30 17:44
  • 호수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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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식물 대부분은 아래로 자라는 것보다 위로 자라는 것이 대다수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사람의 신체 중에 중요한 머리는 밑에 있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한 여러 피조물 중에 많은 것들이 상방지향성(上方指向性)을 가지고 있다. 

나무 중에 거꾸로 자라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 나무는 태양 빛을 받으며 하늘을 향해 쭉쭉 계속해서 자란다. 그래서 사람과 나무는 상방 지향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어린이들의 희망을 표현할 때는 ‘꿈나무’라는 은유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은 기어 다니지 않고 서서 걷는다.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은 병들지 않고 장애가 없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몸이 아프면 앉고 싶고 이보다 더 힘들면 누워 있기를 원한다. 그러다가 방에 엎드려 있거나 병원에 입원하여 누워 회복하지 못하면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 땅에 묻힌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은 서서 걷고, 항상 상방 지향성을 갖고 살아간다. 병이 들고 최악의 환경이 찾아오면  하방 지향을 하려는 속성이 있어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은 마음이 울적하면 우울감으로 내려앉는다. 심리가 하방 지향으로 내려가 삶에 의욕이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위에 있는 곳, 하늘로 향하는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평안의 마음이며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낙천적인 정신적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하방(下方) 지향을 계속한다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도 부정적, 소극적, 짜증, 우울, 비관 등으로 인해 의욕이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이 더 크므로 밝은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산다는 것은 미래에 소망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환경은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 즉, 국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 가는 가운데 놓여있다.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방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길처럼 확산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상방 지향하는 생각과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넘을 수 없는 큰 벽에 부딪혀도 반드시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담쟁이덩굴처럼 인간은 끊임없는 꿈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자신과 가족의 얼굴과 마음속에 미소와 더불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며 희망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동서남북을 바라봐도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희망을 찾아보자.

또 하나의 상방 지향성의 인간관계 속에서 예절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에서 만남은 곧 이별이다. 사람의 생명은 누구든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가 산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밤이 오면 아침이 오듯이 힘겨운 코로나19 정국의 세상살이라 하더라도 희망을 안고 살아보자. 우리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더욱 최상의 마음과 예의를 갖추고 만나고 이별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자녀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 보편적으로 아쉬워하고 보고 싶음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한다. 이별이라는 것은 마음 아픈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족에게는 더 없는 간절한 염원인 것이다. 

2020년 한 해도 지나간다. 우리가 일 년 동안 많은 사람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왔다. 사람은 만남과 이별이 중요하듯이 헤어질 때 예의를 갖춰 정중한 작별을 하는 것이 또 다른 만남에 대한 소망일 것이다. 일반적인 세상의 인간관계에서도 만남과 이별을 잘하는 이가 성공할 수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이 땅의 시민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만나야 하는 하늘의 시민들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만남과 이별을 더욱더 잘해야 한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른 인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만남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어디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가? 
우리는 12월 연말을 돌아보며 상식이 통하는 가정인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가? 상식이 통하는 국가인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이 땅에 소망을 둔 자가 아니다. 오히려 하늘의 소망,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상방 지향성을 가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도 희망을 품고 위로하며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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