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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순교자 김유연 목사 기념문집(5)8·15 광복 후 경성신학교 교수시절
  • 김성호 목사
  • 승인 2020.12.17 16:34
  • 호수 501
  • 댓글 0
         김유연 목사

3. 탁월한 설교가의 면모

한국사회는 당시 여성들을 문둥병자와 같이 멸시와 천대를 하면서 무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구약시대의 솔로몬도 “천 사람가운데서 한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 여자는 한사람도 찾지 못 하였느니라(전도서 7 : 28)”고 하였다.

동양의 공자는 ‘여인과 소인은 가르치되 사람은 만들 수 없다.’라고 하였고, 석가는 ‘상천세계의 모든 번뇌(煩惱)가 모여 하나의 여자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한문(漢文)을 찾아보더라도 계집녀(女)자가 든 글자는 대개가 좋지 못한 뜻글자이다.

전해오는 말에 여자 셋이 모이면 간악하다고 간(姦)자를 쓴다든지, 여자에게 투기심이 많다고 嫉 자를 쓰게 되었고, 며느리 부(婦)자는 계집녀 변에 비취를 써서 여자의 손에는 붓도 칼도 소용이 없고, 그저 빗자루나 들고 안마당이나 쓸라는 뜻이다.

다만 계집 녀(女)자가 들어간 좋은 글자는 안(安)자와 호(好)자인데, 안(安)자는 집실 아래 계집 녀(女)자를 써서 여자는 집안에 있어야 평안하고, 호(好)자는 계집녀 변에 아들자를 써서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종교에서는 ‘여자에게 영혼이 있느냐?’고 까지 토의가 되었다고 전해 오고 있는데, 하여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는 남자들에 의해 천대와 멸시를 받아온 것이 사실 이였다.

이것을 공자도, 석가도, 타종교들도 다 시인했지만, 예수님만은 여성인권 비하에 대하여 거부하며 동정하고, 남권횡포(男拳橫暴)아래에서 유린당한 여성권익을 구원하신다는 설득력 있는 설교를 했다.

이러한 김유연 목사의 설교가 한국교회의 부흥에 기름을 부으며, 여성과 아이들이 교회로 찾아 나오도록 하는 획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 강의를 듣고 나가서 부흥운동을 한 신학생들에게 목회의 힘을 더 한층 불어넣어 주었다.

4. 문인으로서의 면모

김유연 목사는 문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를 잘 아는 이웃들은 그를 유랑시인(流浪詩人)김삿갓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의 글은 깊이 있는 한문학의 세계와 시대의 감각을 예리하게 표출한 감성을 조화시킨 문학의 틀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30년대부터 1950년까지 국가가 정치적으로 혼란의 시대를 겪으면서 그의 글은 기성교단 회지 ”활 천“과 기독공보신문 주필로서 기독교 잡지와 주간신문을 통해 유감없이 발표되었다.

김유연 목사는 한시(漢詩)에도 능했지만 현대시에도 그의 독특한 문학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중에서 ”희 망“이란 시는 기성교단 증경 총회장인 정진경 목사의 생애에 결정적인 전환점의 동기가 된 시로 알려졌다.

= 희 망 =

 

나는 희망에 산다. 희망은 나로 하여금 기뻐 뛰게 한다.

희망은 나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한다. 희망은 나로 하여금 나아가게 한다.

희망은 나로 하여금 일하게 한다.

 

나는 희망에 산다. 희망 앞에 비애는 무엇이며,

희망 앞에 실패가 어디 있으며, 희망 앞에 낙망은 또 무엇이냐?

나는 희망에 산다. 희망의 노래를 힘껏 불러보자.

희망의 일터로 씩씩하게 나아가자. 희망의 앞길은 넓게 열렸네.

 

나는 희망에 산다. 희망(1934, 12. 25.)

김유연 목사의 문장은 생동역이 있고, 운치(韻致)가 있다. 그리고 해학적인 글도 많이 썼는데, 이는 그의 성품이 온화하면서도 해학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김성호 목사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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