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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미래세대 위한 창조론 특강 (129)창조신앙과 구원의 관계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2.16 16:20
  • 호수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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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원 목사

(창조반석교회, 한국 창조과학회 이사, 한국 창조과학 부흥사회 회장, 본지 논설위원)

기독교는 한 마디로 ‘구원(救援)의 종교’이다. 가장 대표적인 성경말씀이 사도행전 16:31절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다. 그리고 구원이란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은 ‘영생’이란 단어로 대표적인 성경말씀이 요한복음 3:16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근본 목적은 바로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라면 그 누구도 이의(異議, objection)를 제기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이라는 말은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 구원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병 고침을 받은 경우에도 구원받았다(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라고 하였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 (행27:44)도 구원을 받았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핵심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1:21절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는 말씀과 딤전1:15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는 말씀이다. 물론 모든 구원이 우리에게 다 필요하고 귀하다. 그러나 보이는 구원, 육체적인 구원은 일시적인 구원이지 결코 영원한 구원은 아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고후4;18) 그러면 영원한 구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혼의 구원’으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는 구원이다. 이 구원이 참 구원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나 체험이 아니라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록이다. 성경에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8-9) 라고 ‘영혼의 구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딤후4:18). 한 마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근본 목적은 영혼의 구원으로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독교들 중에는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만일 하나님이 오늘 밤에 아니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을 부르시면 (눅12:20)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가? 물론 우리의 구원은 과거의 구원, 현재와 미래의 구원으로 복합적으로 엮여져 있기에 여러 가지 신학적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요6:47 )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은 오늘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즉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점이다. 유대인은 이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 그러나 아직 창조주도 모르는 이방인들이라면 예수님을 믿기 전에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구원의 길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이다. 그러므로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면 꼭 창조로부터 설교를 시작한 것이다. (행17:24)  창조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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