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3.4 목 21:23
상단여백
HOME 독자기고 특별기고
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15)정빈편-한국성결교회 창립자 정빈의 생애와 사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2.16 16:06
  • 호수 501
  • 댓글 0

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동 대학  교수

Ⅲ. 정빈의 사상

3. 구습(舊習)에 대한 개화사상

이것슬 보고 우리 교회의 형편을 생각하니 다른 곳슨 널니 보지 못하였슨즉 자세히 아지 못하거니와 셔울도 말하야도 이런 풍속이 적고 또한 이때까지 회당 한복판에다가 휘장을 치고 내

외를 불통하야 삼사년을 회당에 단녀도 어느 형데와 어느 자맨지를 아지도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만흐니 이러케 서로 막고 통하정이 업서셔야 엇지 애정이 생기며 교회가 엇지 진보될 수가 있소.”

전통 사회의 이변으로도 받아들여질 당시 교회 안의 휘장 철폐의 문제는 1913년 예수교 장로회 조선총회에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개교회 당회의 사정과 형편대로 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왔다.

또한 정빈은 직접 복음전도에 우선하여 동경에서나 무교정 복음전도관에서도 개인전도, 노방 전도, 심방 전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여 상대적으로 의료나 문서 매체를 통한 간접 전도의 소홀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교육을 통한 구국(救國)의 가능성을 일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통해서 내다보았다. 정빈은 『그리스도 신문』(1906년 3월 15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 동경셔 한국 유학생의 수효가 한 삼백여명 된다는대 그 중에 각각 목덕이 잇서셔 혹 신학 전문하는 이도 있고 혹 실업 젼문하는 이도 잇고 다른 보통 학과 사학에 일참된 사람도 잇는대 그 공부에 경도는 일본 사람들의 말을 더러도 어학은 각국 사람 중에 데일 수히 깨닷고 공부의 진보가 매우 속하다 하옵니다. 실제 내가 목도하여 보는 대도 한국 학생의 등급이 조곰도 일본 사람의게 느리지 아니하니 미우 감샤한 일이오. 우리의 장래 젼정이 다 이곳셔 유학하는 청년들의게 잇는 줄노 분명히 밋삼니다.”

정빈은 또한 종래 한국의 남존여비(男尊女卑) 구습으로 당시의 사회적 통념이 「대한그리스도인의 회보」(1899년 2월 15일자)에 기록된 대로 “여자들을 무슨 물건같이 여겨 집안에 가두고 자식이나 낳게 하고 음식이나 만들게 하며 잘잘못간에 구박이나 하며 심하면 두드려 주며 여편네가 주제넘게 한다 하며 평생에 날빛을 못 보게 하는” 여자에 대한 봉건적 생각에서 탈피하였다. 「그리스도 신문」 1906년 3월 8일자를 보면 여성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실업에 종사하는 삼십만 명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국가 사회에 미치는 여성의 역할과 그들에 대한 전도 실행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일본은 동경 안에 실업에 종사하는 녀자만 삼십여 만명이라는대 금년 정월에 이곳 셩서학원에서 한쥬일 동안 전도할 일로 각처 각지에셔 다 모혀 의론하였는데 각기 그 디방을 좃차 그녀자들의게 전도하기로 결심하는 거슬 보니 우리나라 교회 갓흐면 엇지 이런 괴회가 있어서 수다한 령혼을 쥬압흐로 인도할 수 있겠소.”

당시 이러한 일련의 개화파 선각자들에 의한 여권 신장론(女權 伸長論)은 한말까지 유교적 전통에 입각하여 남존여비의 가족 윤리를 수령하게 하고 남녀의 평등한 의무와 권리를 향유하는 계기를 가지게 하였다. 정빈의 이 같은 개혁 의지는 한국성결교회가 1911년 3월에 경성 무교정 복음전도관에 임시로 성서학원을 개원하였을 때 남녀공학제의 제도를 받아들여 남자들처럼 여성들도 입학을 허용하여 구가정교육(舊家庭敎育) 외에도 이와 다른 신교육을 받게 하였다:

“략 1년 동안을 시내 전도관(市內 傳道館)에서 十여명의 남녀 수양생을 모화서 교수하다가 一千九百十二年 三月에 죽첨뎡 三뎡목(竹添三丁目) 三十五번디에 신축중(新築中)이던 성서학원이 고성(固成)되매 봉헌식(奉獻式)을 거행하고 신축 학원으로 이전하였더라. 이 때는 넘녀 공학제(男女共學制)가 되어 남녀 학생이 한 강당(講當)에서 배호게 되니, 교실(敎室), 교수(敎授), 경제(經濟) 문데에는 유익되는 방면이 업지 아니하나, 남녀 지식 뎡도의 우열(優勞)의 차이가 현수(縣)하야 곤란한 점이 만핫고 또는 조선의 녀자들이 구가뎡 교육(舊家庭敎育)을 밧은 외에는 다른 교육이 업슴으로 ...”

실제로 1912년부터 1922년까지의 경성성서학원의 총 졸업생 80명 중에서는 여학생들이 1/4에 해당하는 22명을 차지하였고, 이들은 남자 교역자와 함께 졸업하여 초기 전도사역에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1929년 성서학원 제18회 졸업생을 보면, 총졸업생 13명 중에 남자는 4명(박동위, 김광준, 주영식, 신상균)인데 반하여 여자는 그 수효가 남자에 비해 2/3가 넘는 9명(박홍선, 김순희, 김석기, 황소지, 김동환, 이제일, 김옥헌, 김정애, 유경옥)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성서학원 여자 16회 졸업생 일동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