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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9)청교도적 삶의 실천
  • 김영한 박사(기독교철학, 숭실대 명예교수)
  • 승인 2020.12.03 17:53
  • 호수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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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패커는 학생시절(1945년-1946년) 청교도 오웬과 라일의 저서를 읽고 승리하는 삶에 대한 개혁신학의 해결(성화는 성령의 사역이며, 성결은 신자의 사역)을 발견한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레스에 의하면 패커의 케직 운동 비판은 케직운동이 젊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접근하는 승리주의적 지배에 대한 포기의 선언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케직운동이 추구하는 더 높은 도덕적 삶이 인간의 공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추구에 있어서 펠라기우스적인 인간의 행위와 공적을 배제하고 오로지 성령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혜 의존에 호소하는 것은 케직운동이 개혁청교도적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우려하는데서 나온 패커의 개혁적 청교도 성향으로 평가된다. 필자는 이러한 패커의 입장에 동의한다.

2. 청교도적 영성(소명과 풍성) 추구

제임스 패커는 자신이 어린 시절 평범한 사람들에게 받았던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았으며, 후일의 청교도(a latter-day Puritan)로서의 정체성을 키웠다. 패커는 최고 수준의 전문 학자들을 위한 학문을 집필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소명은 평신도를 위한 글을 쓰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패커에게 헌정하기 위해 출판된 논문집(a Festschrift)의 제목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신학」(Doing Theology for the People of God)이다. 패커에게 출세 제일주의(careerism) 야망은 전혀 없었다.

패커는 당시 가장 유명한 복음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주요 대학에서 권위 있는 직책을 맡지 않았으며, 교단에서도 단 한 번도 주목받는 높은 자리를 오래 맡지 않았다. 그는 평화로운 성향이 있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논쟁의 중심에서 일관되게 자신을 주장했으며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패커는 2000년 제자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청교도 소명에 관해 다음같이 피력하고 있다: “나는 청교도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거듭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부터 청교도의 글은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나는 저들의 글에서 영적 권위와 지혜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름부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이후 세대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청교도들의 글을 정기적으로 읽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패커는 그가 저술한 저서 『경건의 추구』(A Quest for Godliness: The Puritan Vision of the Christian Life (1994)는 청교도적 삶의 비전을 일반 신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천명한다.

패커는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청교도는 “변화한 삶을 중생의 증거를 요구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성결한 삶을 강조했다고 천명한다: 화란과 독일의 경건주의자들, 존 웨슬리, 19세기 성결주의자과 라일, 오스왈드 체임버스, 앤드루 머레이, 터우저, 워치먼 니, 존 화이트 등이 분주함을 피하고 성결을 추구했다고 천명한다.

패커의 전기 『현대 복음주의 형성의 선구자 제임스 패커의 생애』 말미에서 앨리스터 맥그라스는 패커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패커를 위대한 신학자(theologian)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그 열정을 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달할 줄 알았던 위대한 ‘삶 신학자’(theologizer)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맥그래스가 패커를 신학자가 아닌 “삶 신학자”(a theologizer)라고 불렀을 때 패커는 그것을 대단한 발견이라고 인정하며 자신은 스스로 일반 기독교인을 위한 체계적인 교리를 연구하는 “전도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패커는 평신도를 위한 비공식 신학적 저술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으며, 자신만의 체계적인 신학을 완성하거나 출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다른 학자들처럼 괴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패커의 신학적 소박성과 마음의 가난함을 발견한다. 제임스 패커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성과 성공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으며, 이것이 사실임이 분명하다. 그는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자신 앞에 놓인 임무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다. 패커는 거실에서 십 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화려한 강단에 서는 것만큼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왕 되신 하나님을 위해 사역했다.

패커는 교회에 대해 “개혁교회는 은혜의 교리와 은혜의 삶을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교회 안의 개인주의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기념하는 교회 자체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영한 박사(기독교철학, 숭실대 명예교수)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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