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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경천애인 정신으로 사는 삶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재이며 하나님과 함께한 존재로서 인간은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존재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며, 인간 사회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9.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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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재이며 하나님과 함께한 존재로서 인간은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존재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며, 인간 사회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한번 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똑 같은 목숨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목숨과 짐승의 목숨은 하늘과 땅차이 만큼 비교 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한 생물들은 모두 다 독특한 목숨이 있다. 짐승의 목숨과 곤충의 목숨이 다르고 파충류의 목숨과 물고기의 목숨이 다르다. 이러한 목숨은 거의 다 지구를 벗어나서는 존재가 불가능하고 사람의 목숨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과 존재의 주인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우리 인생은 그의 기르시는 양이다. 양은 생리와 체질상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짐승이다. 사람과 짐승의 존재 목적은 큰 차이가 있다. 짐승과 모든 생물은 말씀으로 있으라 하시매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육체의 근본인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어 생성되었다. 다른 말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Image of God)대로 지음 받은 것이다.

하지만 불멸의 영혼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중에는 영원한 세계를 망각하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짐승의 삶을 더 부러워할 정도로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 말 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내용들이 그렇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출세영달을 위해서 윤리와 도덕을 무시해버린다. 모든 삶이 자기위주요 선악의 기준도 자기위주일 수밖에 없다.

백성들의 인기편승을 위하여 진리를 잔인하게 매도해버린 빌라도와 지나친 열등감과 권력병에 걸린 헤롯왕은 모두 다 거룩한 인간의 공적들이다. 그러나 짧게 살았으나 영원히 빛나는 목숨들이 있다. 야고보, 스데반, 세례요한이다. 짧게 살았으나 영화로운 삶을 위해서 깨끗하고 고고하게 산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나름대로 사명과 책임을 부여 하셨다. 스데반은 짧게 살았으나 기독교의 거목 사울을 회심시켰고 야고보는 많은 유대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고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닦으셨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짧게 살지만은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할 책임과 나아가서 이웃의 고통을 분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존재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명제는 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래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라고 말할 때 그것은 원죄를 제외하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책임을 방기하고 무책임한 생활을 해나갈 때 발생하는 관계의 단절이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죄중에 살았다.

예수 이전에는 내 중심이었으나 예수 믿은 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 철학자 베이컨은 인생을 3가지로 분류해서 말했다. 하나가 거미 같은 인생이다. 거미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이런 자들 때문에 세상 살기가 어렵다.


그 다음은 개미 같은 인생이다. 긍정적인 면에서 부지런하다. 그러나 개미에게는 이웃이 없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인생이다.  내 것 내 먹고 네 것 네 먹고 하는 식으로 담을 쌓아두고 월담하지 말라는 인생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장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다음에는 꿀벌 같은 인생이다. 언제든지 이웃이 필요할 때 나누어주는 삶이다. 우리 주님이 바로 철저히 주는 삶을 살았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경천애인 정신으로 사는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책임이요 사명이요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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