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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 과정으로서 추도 예배 발전과정(8)제사에 대한 역사신학적 이해
  • 이은선 박사(교회사)
  • 승인 2020.11.13 16:00
  • 호수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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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도 예배는 전통 제사의 요소를 간직한 것과 기독교적인 특색을 가진 것을 함께 가지고 있다. 전통 제사의 요소는 모인 날이 어머니의 기일 날이고, 등촉을 밝히고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통곡한 점이다. 기독교적인 예배의 요소는 기일에 선교사와 교중 형제들을 초청하여 기도하고 찬미하였고 대부인 생존시에 믿음과 현숙한 모습을 기억하였고 다시 기도한 점이다. 이러한 추도예배의 모습은 우상숭배의 요소는 배제한 제사의 요소들을 보존하면서 기독교 예배의 요소를 가미한 특색을 보여주는데, 이후 추도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가면서 고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배제되었다.

1903년 5월 신학월보에 기재된 노다부인의 추도예배를 보면 제물포의 손우정은 모친상 일주기에 음식을 마련하고 수십명의 교우를 밤에 초청하고, 찬송, 기도, 성경봉독, 모친 노다부인의 신앙과 행적 회고의 순으로 추도회를 드렸다. 그렇지만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행해지고 있었으므로 1911년 이천의 남감리회 첫 번째 목사였던 김흥순은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김흥순 목사는 조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조상 제사와 다름없고, 죽은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없으며, 성경에 없는 법이고, 장례식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산 자를 위해 기도하러 모이는 것이라 지적하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1920년대에 조상제사를 둘러싸고 또 한 번의 논쟁이 일어났다. 1920년 9월 1일자에 영주 권성화의 아내 박씨가 “남편이 예수를 믿고 제사를 폐지하자 자살한 사건”을 보도하며 “애매무지한 기독교인의 희생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월남 이상재는 조상 신주를 우상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옳다 할 수 없고,제사는 “부모를 그리며 사모하는 효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교와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하나님의 가르침에 크게 적합 되는 일일 것이라” 하였다. 이 상재는 제사를 부모공경의 표현으로 기독교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감리교목사였던 양주삼은 제사는 “일종의 미신적 풍속이요 의식적 도덕에 불과한 것”으로 사라져야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상재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유교측의 김윤식은 양주삼의 의견에 반대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개벽 이래로부터 시작된 정의 표현이며,돌아간 부모를 추앙하는 생각을 간절히 하는 데서 제사가 제일일 것”이라 주장하였다.49 50 51 52) 한편 이상재는 자신의 앞의 논설을 보충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내고는 각자의 지각에 맡기고 기독교에서도 종교문제화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이 때 동아일보는 제사가 허례허식으로 흐른 것을 비판하면서도 유교의 제사제도는 기독교의 유일신사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니 제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에서 교회는 양주삼 목사를 비롯한 제사금지 입장을 채택하여 시행하게 되었다.

VI. 1960년대 토착화 논쟁 이후 조상제사와 추도예배

1920년대의 제사 논쟁 이후에 제사문제에 대한 더 심도 있는 논의는 1960년대의 토착화 논쟁에서 다루어졌다.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 활동에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신학의 토착화 논쟁이 발생하였고 그 주장의 핵심은 복음과 문화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착화논의가 처음에 신학의 토착화에서 출발했는데,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사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제사를 우상숭배로 단죄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제사는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에 대해 윤성범과 변선환을 비롯한 감리교 신학자들이 신학의 토착화를 주장하면서 제사 문제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1963년에 박봉배는 효정의 표시로서의 제사제도의 근본정신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제사에 포함된 죽음과 사후상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고 하였다.다3 윤성범은 신주에게 제사하는 문제는 일제말의 신사참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敬天)이나 샤머니즘의 종교성을 인정해도 효친(孝親)인 조상제사의 종교성은 인정하기를 어렵다고 말한다. <다음호에 계속>

이은선 박사(교회사)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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