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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 과정으로서 추도 예배 발전과정(7)제사에 대한 역사신학적 이해
  • 이은선 박사(교회사)
  • 승인 2020.11.05 15:02
  • 호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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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헌은 추석에 대해 「그리스도인 회보」에서 논하면서 추석은 주후 33년에 하늘에 감사하는 가배절기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조상제사로 변하였으니 다시 한 번 하늘에 제사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겠다는 시세 변화론을 주장하였다.

사도신경이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처음에는 있었으나 후에는 삭제되었다. 이 구절이 삭제된 이유는 이 구절이 연옥을 연상시키거나 아니면 사후 구원의 가능성을 암시하기 때문에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1901년의 사도신경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었는데, 「신학월보」의 만사문답에서는 사람들의 오해를 방지하고자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있는 “옥에 있는 신들은 홍수 때에 재앙을 당한 사람들의 령혼들이요 신으로 가서 반포하였다는 말은 성신께서 노아를 감동하사 흥수 때에 전도한 말이요 예수께서 삼일 동안 무덤에 있을 때 친히 지옥에 가서 전도한 말은 아니다”라고 해설하고 있다.

V. 효도신학의 발전과 추도예배의 제정

기독교가 제사를 금지하면서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효도신학을 발전시키고 추도예배를 제정하였다. 제사 금지에 따라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선교사들은 기독교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를 하는 종교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효문화운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효문화운동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반대를 완화시켜 나갔다. 먼저 효도신학을 살펴보면 1890년대의 책자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함께 천지의 창조주요 만인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천부(天父)’로 예배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1890년에 올링거가 매클레이의 책을 번역한 『신덕통론』은 “상제를 믿음에 마땅히 어린 아이 그 부모를 믿음같이 하라”하였고 천지 만물의 주재요 뭇 사람의 영혼의 아버지이니 “상제께 효성함을 알지 못하거든 어찌 능히 부모에게 효성함을 알며 一 상제를 공경하며 사랑하는 자는 다시 능히 부모를 생각하고 효성할 줄 아는 자이니라”라고 주장했다. 만물의 근원이요 주재이신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고 효도(믿음)로 공경하는 것은 자신의 가까운 근본인 가족과 부모를 공경하는 기초가 된다고 하였고 그렇게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복주신다고 가르쳤다. 「조선그리스도인회보」는 “영혼이 육신보다 백배나 더 귀하거늘 육신을 낳으신 부모는 공경하되 영혼을 주신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니 어찌 불효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가장 근본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4대까지 혹은 수십 대 위의 시조만 섬기는 제사는 나무의 뿌리는 배양하지 않고 나무의 꽃만 사랑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인륜인 오륜의 핵심에 효도가 있고, 효도의 뿌리는 천륜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부모의 뿌리가 하나님이니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이 근본과 조상을 참으로 섬기는 자라고 하였다.

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대효자였으므로 세례받고 나올 때 성부는 성자를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가지고 ‘아바’라고 불렀다. 그리고 예수님을 형제를 위해 대신 죄를 갚아주신 형님이라고 설명하면서 그에게 순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한국교회는 유교의 오륜과 수신의 법도를 기독교 윤리로 수용하고 실천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죽은 부모에 대한 제사 대신에 살아 계신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강조하였고, 이렇게 살아계신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산제사라고 불렀다. 당시 교회는 부모에 대한 제사와 효도의 문제를 제1,2계명뿐만 아니라 5계명과 연결시켜 이해하였다. 이러한 효신학의 제창은 한국인들의 도덕심에 호소력을 가졌고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사제도 대신에 추도예배를 점차로 정착시켜 나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추도식은 1896년 7월이 이었다. 원산지방의 오씨는 제삿날이 되자 스왈론 선교사를 초청하 여 간단한 추도식을 드리고 나서 마당에 불을 피우고 신주를 비롯하여 각종 제기와 부적을 불태웠다. 이것은 스왈론 선교사가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은선 박사(교회사)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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