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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27)<제4편>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주역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1.05 11:10
  • 호수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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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맞이하여 창립 제114년차가 된 한국성결교회에 대해 기독교헤럴드가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의 저서를 참고해 연재한다.

제4장 일제 탄압과 성결교단 해산

제3절 3.1운동과 기독교 탄압

3.1운동이란? 민족적인 독립운동으로서 ‘한. 일 합방’이 이루어진 후부터 일본제국주의가 한국백성들을 총과 칼로 극심하게 억압하고, 무단정치로 인권을 유린했기에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부당함에 항거하며 일어나게 된 사건이다. 

이에 일본군은 오히려 무력을 통한 더욱 가혹한 탄압과 한국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쓰고 경제적 수탈을 일삼으면서 한국민족은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서, 미국의 대통령 윌슨(Thomas W. Wilson)은 강화조약의 기본 조건으로 14개조항의 원칙을 1918년 1월에 발표하였다.

윌슨 대통령은 “각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그 나라 그 민족 스스로 결정 한다.”라고 선언하고 이른바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를 선포한 것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전 세계의 핍박받는 민족들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고 특별히 일본의 핍박 가운데 신음하는 한국민족에게는 독립운동대한 염원을 갖게 하였으며, 힘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우선 일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중국 상해에서는 여운형, 김철, 김규식 등이 협의하여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보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게 하고, 안창호, 이승만, 정한경 등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러시아 연해주지방에서는 이등휘를 비롯한 여러 명의 독립투사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일본에서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강력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자 1919년에 최팔용, 김도연, 서문, 이종근, 백관수, 윤창석, 김상덕, 최근우, 김수철 등을 ‘독립대책위원’으로 선출하고, 송계백을 국내로 파견하여 독립운동자금과 신문활자를 준비하게 한다. 그리고 최원순, 정광호 등은 이광수가 초안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동경 간다구에 있는 ‘조선기독청년회관’에서 1919년 2월 8일 ‘한국유학생 학우회 총회’ 명의로 군중을 소집하여 모이게 된다.

이 때 모여든 수많은 군중 앞에서 ‘한국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경찰은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하나 둘씩 체포하게 된다. 이에 학생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운동에 가담하게되고 독립의 열기가 더해갔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무렵 국내에서는 일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1919년에 이르러서는 서울에서 손병희, 최린 등 천도교 인사들과 기독교에서 함태영, 박희도, 이갑성 등이 중심이 되었고, 평양에서는 김선주, 변인서, 도인권, 이덕환 등과 정주에서 이승훈, 김병조, 이명룡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기독교 인사들은 목사와 장로들이었고, 주로 이승훈 선생이 앞장서서 활약하였으며, 한국기독교는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해 한때는 천도교 인사들이 등안시 하였으나, 기독교의 진심을 알게 되어 돌아서서 합세 하게 된다. 그리고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이때 주동했던 인사로는 기독교 16명, 천도교15명, 불교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기독교가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일 정오를 알리는 오포소리와 함께 탑골공원 팔각정에 올라가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불러 이 일이 전국적으로 일제히 퍼져나가 3.1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에 맞서 3.1운동에 가담한 애국지사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기도 했지만 민주적으로 나선 애국지사와 국민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대한만국의 독립’을 외치며 서울을 비롯한 지방까지 기독교가 있는 곳에는 모두가 적극 가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기독교탄압과 말살정책을 일본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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