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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36)그리운 북녘땅을 바라보며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10.29 08:38
  • 호수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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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추억들을 잊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기억과 그렇지 못한 그때의 감정들이 더욱 새록새록 떠오른다. 금년도 2개월 정도 남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루하루가 저물어간다.

특별히 이번 칼럼은 탈북 박00 시인이 보내온 장문의 편지로서 북한에 머무는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보내는 오빠의 마음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라기는 평화통일, 복음 통일이 속히 도래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함께 기도하자.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동생들과 헤어진 지 벌써 9년이 되었구나. 이 오빠도 여기 대한민국에서 건강이 잘 있단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하룻길이면 갈 수 있는 고향 땅이건만 갈 수도 없는 나의 고향, 태어나서 자란 그 고향과 두 동생들을 이 오빠는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단다. 

한반도 작은 이 나라 땅에서도 제일 북쪽 끝에 있는 너희들이 사는 온성은 10월에도 추운 계절, 겨울의 시작이겠구나….

10월 31일에는 반년 식량인 겨울 김치를 하는 김장철이구나. 그날은 눈이 내리겠지. 10월 말엔 오빠가 살던 청진은 비가 내릴 때 우리 동생들 사는 온성군은 눈이 내리는 겨울의 첫눈 내리는 날이었지. 10월 25일은 우리 셋째 동생 생일이구나. 멀리서나마 마음 깊이 축하한다.

둘째 동생인 학철이, 너희들 작은 오빠는 행방불명으로 지금도 알지 못한지도 벌써 30년이 되었구나. 1989년 여름에 없어졌다고 우리 동생들이 오빠 군대에서 휴가 왔을 때 말했지. 울면서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그때 어린 나이에 너희들은 부모님들 사랑도 못 받아보고 이 오빠는 군대에 나가 있으니 너희들의 눈물을 모르지만 지금 이 땅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언제나 없어지려는지.

이제 또 매우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겠는지. 이 오빠는 항상 너희들을 위해 근심보다도 살아계신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 주님, 이렇게 그 땅에서 듣지도, 들어도 보지 못한 글을 보내니 동생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겠지만,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들어봤으니 알리라 본다. 생각나지.

2014년 1월 1일, 설날, 내가 미국에서 오신 김도현 목사님께서 설 명절을 외롭게 보내고 있을 이 오빠를 위해 집으로 초청해서 한국에 와서 맞는 두 번째 설 명절을 보낼 때 우리 막내가 전화했지? 그때 김도현 목사님 집에는 의정부에 계시는 고해연 목사님, 김바울 목사님들도 오셨지. 북한에서 오는 네 전화에 목사님들은 깜짝 놀랐어. 혼자 설 명절을 쇠고 있을 이 오빠를 생각하며 울며 전화하는 네 목소리를 목사님들도 조용히 들으며 울었단다.

그때 내가 말했지. 걱정하지 마라. 이 오빠는 목사님들과 설 명절을 쇠고 있다고 우리 막내는 뭐라 했지. “오빠 무섭다고.” “아니다. 우리가 배운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은 나쁜 사람들 아니다. 제일 선한 분들이다. 너희들도 하나님을 믿어. 오빠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또 생각나니? 오빠가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에 있는 “창성한 교회” 다니던 2017년 7월 10일. 그날은 주일, 너희에겐 일요일 오후 2시 전화하면서 목사님과 통화 하던 그날 그때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 “통일되는 그날까지 건강하고. 우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라고” 오빠도 말했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고. 오빠도 너희를 위해 기도한다고. 동생들아, 이 오빠는 처음으로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했단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모르나 “하나님”이라는 세 글자를 전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란다.
오빠는 지금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따르고 있단다. 오빠는 너희와 헤어져 중국을 걸쳐 태국에 도착한 다음 날인 2011년 7월 10일 아침. 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를 부르며 엄청나게 울었단다. 그날 이후로 오빠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단다.

동생들아, 지금은 이 오빠가 보내는 이 편지를 읽고도 모르겠지만 오빠가 믿는 하나님을 내 동생들도 알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너희들도 꼭 하나님을 믿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오빠는 교회 다닌 지는 불과 4년이 조금 지났단다. 2016년 6월 26일 처음으로 교회에 등록하고 다녔으니까.

이 기간 많은 어려움과 고난과 시련들이 있었단다. 아마 이 오빠가 북한에서 겪지 못한 그것을 지난해인 2019년 3월 25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데 하나님 주시는 영감으로 시를 썼단다. 그 시는 그대로 노래가 되고 복음성가로 불러지고 있단다. 너희들은 알지만 오빠는 시는 쓰지만 오빠가 쓴 시가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 복음성가로 될 줄 누가 알았겠니.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는데 오산리기도원 강수정 찬양선교사님께서 이 오빠의 시를 읽고 작곡하셨단다. 오빠가 다니던 교회 오셔서 특송도 부르시고, 오빠가 쓴 가사 제목은 “주 위해 살아가리” 통일되면 그때 들어봐.

사랑하는 동생들아. 지금 오빠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천 동광교회”에 출석하고 있단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오빠처럼 북한을 탈출한 여러분들을 교회 모든 교인이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주고, 안아주고. 한 가정처럼 도와주고 보살펴 주고 있단다. 이번 추석 명절도 고향을 그리며 울고 있을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많은 선물을 보내주셨단다.

교회가 준 것 아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셨단다. 사랑하는 동생들아, 이 오빠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우리 동생 둘 다 오빠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를 바라며 기도한단다. 꼭 복음으로 통일되는 그날 우리 삼 형제가 모여 하나님 아버지를 목청껏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드리자.

그날까지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부디 건강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항상 기도하며 오직 주님만을 믿고 살아가길 바란다. 다가오는 이 추운 겨울도 두 동생 서로 의지하며 우리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웃으며 살길 오빠는 마음속으로 기도할게. 그럼 그날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10월 11일 오빠로부터.“

탈북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며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동생들을 생각하는 그의 절절한 마음이 깊이 다가온다. 남겨진 동생들을 위해 항상 주님께 드리는 기도와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저 북녘에 속히 평화통일, 복음 통일되어 형제들이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탈북 박00 시인이 작사한 ”주 위해 살아가리“ 찬양을 부르며 북한 복음화에 큰 사역자로 쓰임 받기를 소망하며 축복한다.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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