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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52)살짝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10.21 18:11
  • 호수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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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산책길 나무들이 살짝 변하기 시작했어.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노랗게, 벚나무는 드문드문 빨갛게, 아직 대왕참나무는 초록을 담고 있지만, 그 역시 갈색을 품은 채 살짝 변해가고 있어. 가만 보면 모든 것들이 아주 살짝 시작하는 것 같은데 금방 깊어지고 강해져. 정발산의 이른 봄 생강나무가 기억나네. 어느 날 돌기가 살짝 보이는가 했더니 며칠 후 노오란 꽃잎이 솟아났더라고, 그 곁에서 나뭇잎들 살짝 돋아나 꽃과 만나나? 하다 보면 금방 연초록 잎들이 무성해져. 꽃이야 혈기왕성한 여름날에 겨울눈을 잉태하니 그런다 치더라도 나뭇잎은 결국 단단한 나무 틈새를 비집고 세상에 나오는 거라 더 눈물겹지. 그런 봄날이면 새순들을 살짝 만져보게 돼. 순하고 보드랍기가 아이들 살결 같지, 어찌 이 여린 모습으로 그 단단한 나무의 살들을 뚫고 나올 수가 있는 거니,


봄이 그렇게 다가오는가 하면 깊어지고 그 틈새로 여름이 살짝 드리우지, 올해는 여름 끝자락에서 태풍이 지나가더니 어느새 가을을 부려놓고 갔어.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키다리아저씨처럼 길게 새어 들어와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만들곤 해서 저절로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지. 자연스레 역광 속에서 나뭇잎들을 바라보게 되고,
헬렌켈러는 세상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다고 했어. 그녀는 숲속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서 나무를 친구로 삼았는데 어느 땐가는 떡갈나무 속을 흐르는 수액의 소리를 들었다고 해, 꽃을 만지면서 놀라운 나선형 구조를 느꼈고 나뭇잎을 만지면서 섬세한 균형미를 느꼈다고 했지. 벚나무 아래 서서 그녀를 생각하며 빨갛게 혹은 주황으로 변해가는 잎들을 바라보는데 멀리서는 선명하고 아름답던 나뭇잎들이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는 거야, 벌레에 물렸거나 바람에 찢겼거나 얼룩얼룩 병들었거나 곱고 온전하게 물들어가는 나뭇잎은 정말 하나도 없었어. 그뿐 아니야, 여전히 초록인 나뭇잎들이 벌써 낙엽이 되어 뒹굴고 있고, 이르게 지거나 늦게 지고 다르게 자라면서 색다른 모습으로 물들어가고..... 살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 온전한 잎사귀보다 아프고 상처투성이인 모습이 온전한 게 아닌가, 다들 공평을 부르짖지만, 공평은 온전한 자유처럼 존재하지 않아서 희망하는 게 아닌가, 로마서의 말씀처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의 말씀을 자연이 우리에게 선명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아주 조금씩, 세련된 인본 문화와 자기만의 신화를 가진 로마가 자그마한 이스라엘 동네의 예수를 믿게 된 시작은 기적이었지(사실 삶의 모든 갈래는 기적이야) 당연히 주류가 아닌 가난한 자들과 여성들이 그 시작이었고, 귀족 계급의 여성들도 역시 그 그룹 사이에서 소외된 자들이었고,
신촌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성결교회>는 자그마하지만 아름다운 교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서 문을 열고 있는 데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 가난한 유학생들 특히 한 부모인 가정을 품고 있어. 가끔 그 교회를 방문해보면 게임을 하고 있거나 교회 책상에서 잠을 자고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게 돼. 예배 시간에도 예배하라고 목사님이 강권하시지를 않으니 그들이 맘 놓고 쉬고 있는 거겠지. 부모들이 바라봐도 힘든 아이들을 교회가 품고 있는 거지.


코로나 19는 아주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네 사회에 불러왔어. 세계로 여행을 가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만족해야 했고 밖에서 떠돌던 사람들은 집으로 귀가해야 했어. 작고 섬세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된 거지,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사소한 일상에 만족해야 하는 시절, 부흥보다는 내적인 성숙을, 성장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시선을 지닐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풍성해질까, 설령 경제적인 퇴보를 한다 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발전이 아닐까. 살짝 들리네. 가을 깊어지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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