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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사(?) 총무 = 마틴 루터교단이 변혁기를 맞이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인터넷 신문인‘성결네트워크’에 『무림지존(武林至尊)』이라는 단편소설까지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소설에서 복선으로 교단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성사(基省社)>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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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1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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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단 역사상 겪지 못했던 초유의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교단 총회는 지난 5월 28일에 세한교회에서 열린 제103차 총회에서 우창준 헌법연구위원장을 심판위원회에 소환하는 결의를 했다. 또한 지난달 25일, 총회본부에서 열린 총회 실행위원회 때는 권석원 총회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건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본지에서는 송윤기 총무에 대해 “연약하고 나약하여서 이 변혁기에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 기사가 실렸다. 이에 대해 송 총무는 본지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했다.

게다가 본지의 지난호 1면에 ‘교단을 움직이는 손과 정치장로들’에 관한 기사가 게재되어 교단이 술렁이고 있다. 또한 ‘성결네트워크’에서는 A장로와 H목사에 대한 비판과 경주에서 돈 뿌려진 기사가 실려 일파 만파, 교단의 문제가 복잡해지고, 변혁기라는 느낌이 든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총회본부 정책에 대한 행정 책임자인 송 총무의 역할이 지대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판이 아닌 정책 총회로 변화시켜 종교개혁기의 마틴 루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경리사원 역할로 끝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지금처럼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즉 민족주의가 형성됐고, 사회가 불안정했고,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이성적인 깨우침이 있었다.

종교개혁 이전 중세 가톨릭 로마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전통이 권위를 장악했었다. 또한 교황 왕국을 건설했다. 중세교회의 교권 타락과 신앙의 변질은 극에 달했다. 그 모습은 교황청의 사치와 도덕적 타락, 교회 감독·사제들의 방종, 그리고 성자 숭배, 성지 순례, 세례명, 성물 숭배 등 신앙의 무속화의 타락상으로 나타났다.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사제들은 귀족들만 읽을 줄 알았던 라틴어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1520년에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쓴 서한」이라는 글에서 중세교회의 타락상을 지적했던 루터는 “추기경들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도적놈처럼 돈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며 “교황청의 부패상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니 곧 성직매매, 술주정, 사기, 도적질, 강도질, 사치, 매춘, 협잡질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로 가득 차 있는데, 적그리스도가 다스렸다 해도 이보다 더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폭로했다.

이러한 폭로를 하면서 95개 반박문을 붙인 루터는 화형을 당할지 모를 법정에 서게 되었다. 많은 지지자들은 루터의 설교에 감동했다.

그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교황의 폭정과 타락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다른 속셈으로 귀족이나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이 기회에 회복시켜 보려고 루터를 통해 교황에게 대리항거를 시도하려는 속셈까지 가지고 있었다.

1521년 4월 16일 루터는 재판장인 보름스의회에 입장했다. 이 시기에 루터는 하나님을 체험했다. 온몸의 떨림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알지 말라”며 “도리어 싸움을 주러왔고 교황의 타락을 경계하려 한다”는 말씀이었다.

사형 언도를 받을지도 모르는 법정에 선 루터는 “제가 성경의 증거나 명백한 이성에 의하여 다른 확신을 갖지 않는 이상 저는 제가 인용한 성경들에 사로잡혀 있으며 저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포로가 되어 있다”며 “양심에 거슬려 행동하는 것은 안전한 것도 옳은 것도 아니기에 내가 여기 섰다”고 말했다. 또한 “나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 고백했다.

루터의 묘비에는 “내가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주의 일을 선포하리라”고 적혀 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 오늘의 기성사(?) 성원들이 다 사라지면 성결교단 후손들이 모여 2009년도 선조들을 뭐라고 평할까?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에 읽었던 샤롯 브론테의 『제인에어』에 “어떤 것에 대해 미운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꼬치꼬치 캐고 들거나 속상해 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것이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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