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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32)여성과 소외된 환자 위해 헌신한 서서평 선교사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09.23 17:05
  • 호수 493
  • 댓글 0

구한말(舊韓末) 한국교회의 시작과 발전, 부흥의 과정에서 신앙의 선조들이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영혼을 사랑했으며, 초기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쌓아 올린 성과 때문에 교만에 빠져 있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을 담아 우리나라에 입국한 소중한 선교사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데 테레사보다 18년 앞서 여성들과 소외되고 외면받는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소록도에 한센병 요양시설을 만들게 한 장본인으로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생애를 살았던 진정한 예수의 제자인 주인공 서서평 선교사(사진 하 )이다.

서서평(徐舒平)은 1880년 9월 26일 독일 남부 비스바덴에서 미혼모 안나 셰핑의 딸로 출생했다.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Elisabeth Johanna Shepping)으로 미국에 있던 어머니에게 가톨릭(Catholic) 신앙(Faith)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의절을 당했다. 그러나 1911년에 동료 선교사 포사이더(Forsythe)로부터 그녀의 인생에 최대 터닝포인트가 되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태평양 건너에 있는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이 있는데, 그곳에는 의료시설, 위생 관념조차 부족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의사에 의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은 엘리자베스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조선인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 소명으로 간호사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장로회에서 파송하는 해외선교사로 자원하게 되었다.

드디어 엘리자베스가 32세 때인 1912년 2월 20일에 조선으로 향하는 여객선 코리아호(S.S.Korea)를 탔다. 약 20여 일 동안의 항해 끝에 그녀가 한 번도 그곳으로 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조선의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녀는 성격이 급하고 활발하여 사람들과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자국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한국어로 조선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열심히 배웠다.

조선에 입국한 서서평은 파송선교회의 계획에 의해 서울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 양성 교육과 기독교 선교 활동에 임무를 받아 최선을 다해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 후 1919년 전국적인 3.1독립만세운동이 불길같이 터지자 서서평은 만세운동에서 부상당한 조선인들을 친절히 치료해 주었다. 또한,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옥바라지를 하며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일제가 서울 세브란스 의료 활동을 금지하자 그녀는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가 선교부에서 운영하던 광주 제중원의 간호사로 의료,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서서평 선교사는 지방으로 내려온 후부터는 목포, 제주도, 전주와 군산, 광주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여성들에게 성경공부와 삶에 절대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구암 예수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그녀의 탁월한 기획력과 사업 수완을 동원하여 타 병원과 비교해 한국인 조수, 입원 환자 수, 진료 횟수가 월등히 높은 성과를 내는 병원 경영의 발전을 보였다.

그녀는 병자, 간호학교, 육아사업, 윤락여성 구조, 빈민구제, 이일학교 설립의 사역으로 헌신하여 수많은 사람의 어머니로 살았다. 된장국에 보리밥을 좋아하고  고무신을 싣고 다니며 전도와 교육, 사랑의 실천을 하는 동안 만성 풍토병과 영양실조, 극도의 약한 체력의 상태로 그녀는 54세인 1934년 6월 광주에서 22년 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소천하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동전 7전, 강냉이 가루 2홉, 담요 반장, 다른 반장은 다리 밑에서 자고 있던 걸인에게 나누어주었다. 마지막까지 조선 땅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시신마저 병원에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하였고 그녀의 장례는 광주 최초로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한센병 환자, 노숙자 수천 명의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광주의 ‘어머니’라고 울부짖으며 애도의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그녀는 전라남도, 광주시 양림동 108번지 선교사 묘원에 고이 잠들어 있다.

생전에 서 선교사는 ‘조선의 어머니’로서 14명을 양아들, 딸로 입양하고, 매년 4만여 명 이상의 여성들을 만나 교육했다. 여자 신학교인 이일학교(현 한일장신대학교 전신)를 설립하였으며, 조선여성절제회, 여성전도회연합회, 조선간호부회, 부인조력회 등을 조직하여 소중한 한 여성으로 성장하도록 기독교 정신으로 선교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2017년 4월에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가 영화관에서 개봉되어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미혼의 몸으로 타국에 와서 진정한 십자가 희생과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며 무소유의 생활로 나보다 더 약한 자를 위해 살다가 천국으로 이사한 서서평 선교사를 기리며 우리도 그녀의 신앙과 삶에서 교훈을 얻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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