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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순 전도사 ‘고군산 열도 복음화 재조명’“사마리아 여인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 광풍”
  • 기독교헤럴드 역사팀
  • 승인 2020.09.09 16:20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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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명순 전도사                                                                증경총회장 김용은 목사

            

추명순전도사의 출생과 결혼

추명순 전도사는 1908년 3월 충남 보령군 웅천면 서정리에서 유교를 섬기는 추씨 가문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육하에서 부모님의 권유로 15세에 서천군의 조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바람기로 고통과 우울한 시기를 보내면서 밤마다 정화수를 떠다 놓고 조상님께 빌어보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신혼생활 파탄은 물론 기력조차 잃게 되었다. 

예수님 영접과 헌신

그녀는 수년간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26세 되던 해 어느날 희망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예수 믿으면 다 해결 된다’는 말을 하면서 접근해오자 추명순은  ‘예수 믿으면 무엇이 해결되느냐?’고 묻게 된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예수 믿으면 모든 근심되는 일이 다 해결되고, 마음에 평강이 찾아와, 영생을 얻게된다"라고 전도하였다. 추명순은 그 말을 듣고, 십리길이나 떨어져 있는 교회에 등록하고, 새벽마다 예배당에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추명순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면서 가슴이 뻥 뚫리면서 남편 때문에 한이 서렸던 마음이 풀어지고, 남편에 대한 지난날의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이 평안이 찾아오자 다른 사람에게도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온몸에 꽉 차게 되었고, 마음에는 용기가 샘솟듯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전도했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누비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붓기도 하고 피곤해서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전도에 열중하였다.

흙구덩이에서 기적처럼 살아나다.

하루는 전도하고 돌아오던 길에서 만난 남편은 그녀를 집으로 끌고 가서 “예수 귀신에게 미쳤다!”며 무려 10시간 동안이나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박달나무 몽둥이로 때려서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게 되었고, 급기야는 초 죽음이 된 그녀를 산으로 끌고가 구덩이를 파고 목만 내놓고 땅에 묻으며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고, “당신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자 남편은 “정말 지독한 년이다.” 면서 그녀를 땅에 묻어 둔 채 그냥 혼자 내려가 버렸다.

그녀는 하나님께 “차라리 여기서 죽게 해주세요” 라고 애원하며 간절히 기도하자 얼마 후 기적처럼 그를 묻은 흙덩이가 갈라지면서 다시 살아서 나오게 되었다.

아들의 죽음과 비인성결교회를 설립하다.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였지만 이러한 일이 있은 후  20살이 된 다 큰 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인생의 절망은 또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남편과 집안 식구들은 아들의 죽음의 책임을 그녀에게 돌리고, 가문에서 쫓아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추명순이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예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 추명순 집사는 비인으로 가서 전도하다가 당시 신학교 3학년인 조종영 전도사와 함께 비인 성결교회를 개척하였다. 비인을 중심으로 전도하면서 인근에 있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설립을 돕기도 하고 안면도 장로교회 개척자와 힘을 합하여 천막교회를 세웠고 교회를 건축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때 교회폐쇄와 환난

일본제국이 교회를 박해하고, 4중 복음을 전하는 성결교회 문을 철폐하고, 모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던 1943년에도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예배드리다가 발각되어 유치장에 갇혀 일본군에게 온갖 수모와 폭행을 당했다. 비인성결교회가 폐쇄되자 그녀는 집사 신분으로 이웃 장로교회로 찾아가서 계속 전도하면서 해방이 될 때까지 원두리 교회와 전라북도 김제군 용진면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1945년 해방된 후에는 다시 성결교회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6.25 전쟁으로 점령한 공산군들이 교회를 내놓으라는 협박했으나 굴하지 않자 추명순 집사를 죽이려 하였는데 어느 성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김용은 목사와의 만남과 고군산 전도

서천의 비인성결교회에서 헌신하며 봉사하던 중 추명순 집사는 군산 중동성결교회를 담임하던 김용은 목사(제26대 기성 총회장)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는데, 부흥강사인 김 목사가 볼 때 추명순 집사가 남다르게 열심히 특심한 것을 보고 ‘군산 앞에 있는 섬에가서 전도할 마음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하기를 "어디든지 하나님의 명령이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기독교 복음의 불모지이며, 우상과 미신으로 찌든 섬, 말도는 귀신의 역사가 심해서 보신탕을 먹고 섬에 들어와 내리면 즉사하든지, 장애자가 되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고 한다. 여자들이 아이를 출산할 때 집에서 피를 보면 용왕이 노여워해서 풍랑이 일고, 고기도 잡지 못하고, 사람도 죽는다며 낳지 못하게 하고, 움막집에서 아기를 낳게 하는 미신 문화가 창궐해 있었다.

섬의 토속신앙인 우상타파에 앞장서다.

추명순 집사는 이처럼 우상과 미신 문화가 판을 치는 섬에 여인 혼자 몸으로 들어가 귀신과 싸우며 금식과 철야기도로 전도하기 시작했으나, 토속인 무녀들과 점술가들의 온갖 핍박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말도뿐만 아니라 무녀도에도 교회를 세우는 일에 성공하였다.

추명순 집사는 가족도 아들도 잃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참 행복을 노래하였다. "김용은 목사와의 만남은 축복이었다. " 는 고백과 하면서 만남에 대한 축복을 고대하며 살아가게 하고, 좋은 만남은 특권이라고 말했다.

김용은 목사는 고군산 열도에 교회를 세우고, 섬 복음화를 위한 꿈이 추명순 집사와의 만남으로부터 이루어졌다면서, 미국 선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와 비교할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추명순 집사가 외딴 섬에서 복음을 위해 50여 년간 헌신한 것은 성결교회의 자랑스런 유산이다.”라고 말했다.

고군산 전도의 산 순교자

추명순 집사는 김용은 목사의 추천으로 전도사로 임명받았고, 고군산열도에 대한 전도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김용은 목사의 꿈과 군산중동교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추명순 전도사의 순교 정신이 융합되어 복음의 씨앗이 섬마다 뿌려지고 성결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고군산 열도에는 성결교회의 자랑스런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추명순 전도사는 순교자는 아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들과 순교자에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선교적 삶을 통해 주님의 복음을 위해 순교 정신으로 온전히 희생적 삶을 살아오신 것은 순교자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고군산 섬들에 세워진 성결교회

추명순 전도사는 고군산 열도 11개의 유인도에 8개의 성결교회를 설립 또는 폐쇄된 교회를 재건하였고, 일본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이 될 때까지 원두리 교회와 전북 김제 용진교회 개척을 포함하여 고군산 열도의 각 섬에서 미신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바꾸어놓은 초석이 되었다.

고군산열도의 11개 섬에서 추명순 전도사는 선유도를 시작으로 장자도, 방축도, 신사도, 야미도, 무녀도, 관리도, 연도, 말도 등 전도를 하지 않는 섬이 없고, 기도 처소를 만들어 부흥하면 교회로 다시 세우는 일을 계속 했던 것이다.  당시 고군산 열도의  섬교회는 군산에서 배로 8시간 9시간을 가야 도착 할 수 있는 열악한 섬들이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많았고 목회자 없는 교회는 교회문을 닫아야만 했던 교회들이 여러 곳이 있었다. 이런 곳에 가서 추명순 전도사는 문닫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그곳을 위해 김용은 목사에게 요청하여 교역자를 파송하고 교회를 새로 문을 열게 하는 일을 담당한 것이다.

그녀는 초기에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와 여러 섬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는 제일 끝에 있는 말도에 들어가 정착하고 교회를 세웠다.  당시 여자들은 부정 탄다며어선에는 태워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섬이 싫다고 해서 쉽게 섬 바닥을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추명순 전도사를 ‘섬마을 사랑의 어머니’로 ‘고군산 열도에 한 알의밀알’로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기독교인에게 ‘코로나19’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신앙적인 축복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군산중동교회 서종표 목사

추명순 전도사 기념관 건립을 시작하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군산지방회의 추명순 전도사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숙원사업으로 추진 중인 기념관 부지로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28-2’를 정하고, 고군산 열도에서 헌신적으로 전도에 열정을 다해 사역했던 추명순 전도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설립하고 전도에 대한 교훈을 삼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하고 있다.

추진위원장 : 송문길 목사(군산지방회장, 수성교회)

부 위 원장 : 오흥덕 목사(선유도교회)

고        문 : 김태곤 목사, 권성만 목사, 최병곤 목사, 이종기 목사, 강근호 목사, 류은택 목사, 

                 안태만 목사.

공동위원장 : 최평호 목사, 서종표 목사, 김헌곤 목사, 장세욱 목사.

총       무 : 김상남 목사(말도교회),  회계 : 김기병 장로(중앙교회).

실 행 위원 : 하정호 목사, 백운모 목사, 성원기 장로.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는 목회자들의 기도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기독교 교인들의 신앙적 치유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과, 고군산 열도의 섬들 중 말도, 방축도, 명도를 연결하는 연륙교 건설로 인한 관광객들의 순례 공간으로도 적합한 시설을 디자인할 계획이다.

기념관으로 세워질 말도 마을회관

현재 말도에는 추명순 전도사의 기도처가 있고, 기념관 바로 앞에 군산대학교에서 추진하는 해상풍력단지 관리소와 안내소가 설립되어 관광과 휴식객들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쉼터와 힐링센터로도 최적의 장소가 될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손양원, 주기철 목사 그리고 문준경 전도사와 같은 순교자들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주도하며 민족의 소망을 안겨다 주었다고 알려졌다면, 추명순 전도사가 생을 마감하기 까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의 순수한 열정으로 전도한 사역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헤럴드는 한국성결교단 창립 제114년 차를 맞이하여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뜻에서 ‘한국성결교회 성장사’와 성결교회의 순교자열전 등을 연재하는 과정에서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 버금가는 서해안 섬 지역 전도자 추명순 전도사를 조명하여 교단의 부흥과 교역자들에게 약함이 강함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추명순 전도사 기념관은 그동안 “말도마을회관”으로 사용하던 건물(부지 200평과 건평 120평)을 추진위원회에서 구입하여 리모델링하기로 하였다. 건물 구입비 1억 5천만원(대지포함), 리모델링비 5,000만원 중 계약금 1천5백만원과 중도금 6천만원은 지불하였고, 이제 잔금이 남아있다.

우리가 기대하기는 산 순교자의 삶을 사신 추명순 전도사의 신앙을 본 받고 계승하고자 말도에 기념관을 세우는데 많은 교회와 성도가 동참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후원계좌 : 농협 3511143239093  예금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군산지방회 추명순사업회

안내전화 010-3545-7225 (총무 : 말도교회 김상남목사)

추명순 전도사의 생애와 사역은 군산중동교회 서종표 담임목사가 자료를 제공하여 애독자 

여러분에게 소개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기독교헤럴드 역사팀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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