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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31)대신·백석 교단의 거목 고 최순직 박사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09.15 17:10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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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최순직 박사

 
조직신학자 최순직 박사는 항상 검은 한복을 입고 강단에 섰다. 그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강의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대목에서는 분명한 어조로 힘주어 강조하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목회의 열정을 학생들도 갖기를 원했다. 그런 그의 강의는 학생들의 신학과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 박사는 1923년 3월 16일, 함경남도 함주군 상기천면 오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로리소학교를 졸업하고 김치선 박사의 양아버지였으며 평생의 은인이었던 캐나다 선교사 영재영(Young)이 설립한 함흥 영생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또한 1943년 일제 강점기에 학도병 징집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중화민국 해암공립영화 국민우국학교 교사로 봉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교에 가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으로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1945년 3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한 지 일 년도 못 되어 폐결핵 진단을 받아 학교를 중퇴하고 요양을 시작하였다.

석 달 정도 살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산기슭의 격리된 오두막집에서 혼자 외롭게 지냈다. 당시 최순직은 40㎞가 넘는 ‘결핵환자 보호소’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의 어머니로부터 사정을 들은 간호사가 보증을 서주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간호사는 틈틈이 찾아와 “회복이 멀지 않다”고 격려해 주었고 최순직은 간호사에게 희망을 느꼈고 건강에 차도를 보였다.

최순직 박사는 1950년 6.25 전쟁을 피해 아픈 몸을 이끌고 그해 12월 남쪽으로 내려와 경남 거제도에 정착하였으며, 계룡산 기슭에서 병든 몸으로 다년간을 동굴에서 기도하며 생활하였다. 이북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감당하였지만, 평양신학교를 중퇴하였기에 1952년 총회신학교에 편입하여 방학 때에는 목회하며 거제도에서 대구까지 통학하면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55년 한남노회 제37회 정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부산 한양교회 담임목사로 목회에 전념하였다. 1958년 3월 20일에는 대한신학교 학장이었던 김치선 박사의 차녀 김동화 씨와 결혼하였다. 그는 1959년 4월부터 대한신학교 서무과장과 시간강사로 근무하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대한신학교 교수로, 1981년 2월부터는 방배동 총회신학교 교수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1999년에는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 1999년 10월 10일 자택에서 소천하여 미국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파크에 안장하였다.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노선을 대신과 백석교단이 계승하도록 기틀을 놓은 최순직 박사의 아내 김동화 사모는 1928년 2월 5일 평양에서 김치선 목사와 이홍순 여사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치선 박사를 따라 1931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그곳에서 공부하였다. 그녀는 1945년 경성사범학교 본과에 입학하고, 민족이 해방을 받아 경성사범학교가 국립 서울대학교로 편입됨으로써 예과를 졸업하고 본과에 입학하여 195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녀는 대한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수년간 강의하였다.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도저히 아기를 출산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던 김동화 사모는 최순직 박사와 결혼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 태은 두자녀를 출산하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현재 최순직 박사, 김동화 사모의 사위는 한국에서 안과의사로, 며느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간호사로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1975년 미국으로 떠나 이민생활을 하다 1992년 한국에서 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최순직 박사에게 다시 돌아와 남편과 함께 생활하였다. 1999년 최순직 박사가 작고한 후 온누리교회에서 권사 취임을 하고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김동화 사모는 2014년 미국으로 건너가 새소망교회를 섬기며 사명을 감당하다 2020년 8월 13일, 숙환으로 육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최순직 박사의 가족

장례식은 George Washington Memorial Park Chapal에서 아들 최태은, 며느리 최현숙, 손자 최바울, 손녀 최진주, 손녀사위 저스틴 김, 손녀 최안나와 딸 이은혜, 사위 이기증, 외손자 이명철, 외손자 아내 이조에나, 외손녀 이지혜 씨가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입관예배(Viewing Service)는 8월 15일(토) 오전 11시에, 하관예배(Burial Service)는 오후 12시 30분에 장두만 목사와 구경서 목사의 집례로 가족장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생로병사를 겪게 된다. 지금까지 최순직 박사와 김동화 사모의 삶에 대하여 간략하게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김치선 박사의 삶과 사역에 대하여 논문과 글들을 학회발표와 출판으로 소개했다, 그분의 가족인 고 최순직 박사와 고 김동화 사모를 추모하면서 후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한다.

독자들이여!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십자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여 생명의 말씀 속에 위로 받아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  선 박사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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