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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 교수의 52주 성령학교 소개(17)성령충만의 정의
  • 배본철 교수(교회사)
  • 승인 2020.09.10 16:09
  • 호수 492
  • 댓글 0
성결대학교 신학부 교수

1. 성령충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케 된 상태

성령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령충만을 성령의 은사나 기적 행함 또는 열광적인 기도의 몰입이나 황홀경의 체험 등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충만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성령충만이란 성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자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다. 성령충만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자.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은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 성도들의 안에 거하시기 시작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단지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상태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하다. 성도들이 자신의 욕망과 편견 등으로 가득 찬 영혼으로는 결코 성령충만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성도들의 영혼이 붙잡히게 될 때 성령 충만의 상태가 주어진다.

성령충만할 때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와 복종의 영으로 넘치게 된다. 에베소서 5장 18절부터 21절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경고하셨다.

즉 성령충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뜻으로 늘 영혼이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곧 성령충만의 상태이다.

2. 성령충만이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

크리스천들이 관념상으로는 성령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비록 성령충만을 구하고는 있지만 이를 얻지 못하는 경우 또한 많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많은 기도를 드렸을지라도, 실제로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인 복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들 가운데 성령충만을 구하고 있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그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마음의 태도를 회개하여 주님께 대한 복종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 때 성령 충만을 받았으나 현재는 충만한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주 쓰러지는 분들이 있다면 과연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성령께 복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그 부분을 새롭게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성도들의 영혼이 거듭난 이후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히 성도들의 영혼을 통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대부분 신자의 삶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인격을 지니고 인격적인 관계를 성도들과 인격적 관계를 원하신다.

3. 성령 충만이란 성령과 친밀히 교제하는 상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원하신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피했다(창 3:8-10).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멀리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온 것은 죄악과 수치와 두려움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인간의 영혼은 부패한 죄성을 유전(遺傳)으로 온 인류에게 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어진 교제의 다리를 다시 잇고 하나님과의 교제로 자리로 죄인들을 초청하고 계신다(계 3:20).

신앙의 경륜이 오랜 분들만이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초신자라 할지라도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성령 충만한 상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의 회복이란 바로 주님과 끊어진 교제를 다시 이어가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배본철 교수(교회사)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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