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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14)교회에서 방역보다 주의 사랑으로 맞이해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8.13 15:01
  • 호수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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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장)

‘코로나19’에 대한 연재 마지막 회이다. 전염병이 그칠 줄 모른다. 주일 아침마다 예배당에 들어가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방역당국은 아니지 않는가? 방역절차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힘들고 지쳐서 교회를 찾아오는 성도들을 주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어야 한다.

왜 전도사들과 집사들만 교회 마당에서 고생하게 하는가? 담임목사와 부목사도 다 나와서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하게 환영하면 안 되는 것일까? 가뜩이나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심방도 안하는 판국인데, 찾아오는 성도를 모른 체하고, 설교준비에 집중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집무실에서 나오지를 않으니 성도들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줄까?

아테네 박물관에 소를 둘러멘 제사장의 모습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기 위해 어린 소를 메고 가는 육감적인 이방 제사장의 모습이다.

소를 둘러멘 모습이 잃은 양의 비유에서처럼, 양을 살리려는 목자의 사랑이 아니고, 제물을 잡아 받치려는 제사장을 두려워하는 소의 본능이 느껴진다. 어린 송아지라 크게 발버둥도 못치고, 제단에서 우상의 제물이 되려니 본능적으로 큰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다. 교회는 이방 제사장과 달리 목회자들이 전염병에 시달리는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예수님의 토라는 바리새인에게 가득한 부패는 탐욕과 무절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탐욕은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단어로 사람이 멀리해야 할 덕목이다.

오늘 예수님의 토라는 이렇게 탐욕과 무절제가 가득하다고 책망한 것에 대해 ‘<‥>’? 라고 빈칸으로 둠으로써 바리새파에 대해 독자들이 판단하도록 문을 열어 놓는다.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추측해보면, 우선 자신들이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나사렛 예수님을 공격하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그릇의 속을 닦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된 조상들의 전통으로 자신들이 계승한 것이라고 공로인정을 요청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정결 법에 대한 결론으로(누가복음 11:41) 바리새인의 정결 법은 우상숭배와 같다고 비판하신다. 교만한 사람이 버리지 못하는 탐욕과 무절제는 바리새인이 우상숭배로 가는 길이다. 그릇의 겉만 닦고 속을 그대로 방치하는 바리새인들의 정결 법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는 신앙이기에 하나님께 만홀히 여기는 행동이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히브리어로 미츠바 라 하여 계명을 중시하고, 12세가 되면 성인식을 통하여 계명의 아들로 자라나게 하는데, 이들의 미츠바는 모세의 율법을 율법주의에 입각해서 계승하는 것이기에 형식적이고, 계명의 뜻을 무심코 넘어가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고 허물어지고 행악을 쫓다가 ‘여호와를 버리는 일’로 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결국 부패한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유대인의 정결 법이 목표로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투마 곧 ‘정결’이다. 이 투마에 집중하는 유대인은 코쉐르 라는 음식 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서 아무 것이나 먹지 않는다. 투마는 유대인에게 불결한 것을 위생적으로 정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본성적으로 추구해야 할 거룩하고 정결한 삶과 같은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중식당과 카페소모임, 지하철 같은 인구밀집에는 자유롭게 놓아두면서, 유독 기독교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교회의 방역강화만 강제하므로 위선적이고, 위헌적인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비난을 하게 된데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부터 교회는 더 한층 주일예배, 가정심방, 구역소모임, 기관친교 등을 강화하여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회복하고, 문 앞에서 체온체크만 하지 말고 지친성도들을 따뜻한 주의사랑으로 맞이해 주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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