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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 <21><제4편>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 주역들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8.12 15:26
  • 호수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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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영 목사

2020년을 맞이하여 창립 제114년차가 된 한국성결교회에 대하여 기독교헤럴드가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교훈삼아 연재한다.

제2절 초기 해외선교 사업

중국 본토 대륙에 대한 선교

한국교회가 동 만주를 비롯하여 일본선교에 이어 중국 본토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한국교민들이 중국으로 이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억압을 피해 독립운동원들과 그들의 가족이 먼저 해외에서 활동할 근거지로 중국 상해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음을 알고 중국본토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먼저 장로교회가 중국에서 한국교민들이 주로 살고 있는 상해, 남경, 북경, 천진, 태전, 통구 등 지역에서 선교를 시작하며 제1차로 1921년 상해에다 ‘상해한인교회’를 처음으로 설립한다.

한국성결교회도 1933년 ‘경성성서학원’에서 공부하던 이헌영 전도자가 상해에 파송되어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고, 이 복음으로 전도된 100여명의 신자들과 의기투합하여 ‘상해교회’를 설립하였으며, 한국성결교회와 장로교회가 함께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경쟁적으로 복음을 교민사회에 전파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에서 ‘민주사변’과 ‘중·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처 들어와 상해지역의 교회들을 극심하게 탄압하자, 일본군의 압제를 견딜 수가 없어서, 숨어서 선교하는 것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이헌영 목사가 한국에 귀국하여 ‘상해교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제3절 교단월간지 ‘활천’ 출판과 문서선교

어느 날 ‘경성성서학원’ 앞마당의 뜰을 거닐면서 이명직 목사와 이명헌 목사가 나누던 이야기 중에 “이제 우리성결교회도 기관지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란 의견일치를 보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각 교단에는 장로교회에서 ‘신학지남’ 감리교회에서 ‘신학세계’ 구세군에서 ‘구세신문’ 안식교회에서 ‘시조월보’ 형제교회에서는 ‘복음신보’를 출간하고 있어, 한국성결교회가 창립 된지 14년이 되는데, 기관지가 없음을 부끄럽게 느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921년 4월 ‘제1회 전국 교역자 간담회’에서 이명직 목사가 발언권을 얻어서 “한국 성결교회 기관지를 발간하자”고 제안하자 전체회원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이어서 그 자리에서 즉시 ‘기관지’ 발행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이에 따른 내규와 운영방침까지 논의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1. 기본 기금은 남녀 교역자들이 전액을 부담하고, 남자 교역자는 10원, 여자 교역자는 5원씩 기부하여 총액 500원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2. ‘경성성서학원 졸업생은 ’활천기금‘으로 남학생은 10원, 여학생은 5원을 납부한다.

3. 기관지내용은 성경강의, 설교, 간증, 신앙전기를 게재하기로 한다.

4. 교단지 강령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으로 한다.

5. 교단지 제호는 活泉(활천)으로 한다(요한복음 7장 37~38절: “나를 믿으면 성경 에 이름같이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의 사상을 가진다).

6. 조직으로는 사장에 E. A.길보른 선교사, 주필은 임명직 목사, 편집주무는 이상철 목사로 한다.

위와 같이 결정하고 1922년 11월 25일 드디어 ‘활천’ 창간호가 출판되었고, 각 지역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문이 쇄도하여,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러시아에서 까지 주문을 받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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