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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16)신약시대의 구약사본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0.08.05 17:30
  • 호수 489
  • 댓글 0

  서울신학대학교 제13대 총장

  서울신학대 명예교수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겨우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만이 기원전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해 사본의 발견은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왜냐면, 현존하는 모든 구약 사본은 사해 사본 보다 1000년 후에 기록된 것으로 신약 시대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 피터스벅 사본(St. Petersburg Codex)

이 사본은 후기예언서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12 예언서를 기록한 것으로 1839년 Firkowitsch가 Chufutkaleh 회당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사본의 연대는 대다수 학자들이 A.D.916년으로 혹은, A.D. 930년으로 본다. 이것은 티베리아 맛소라 체계에 바벨로니아에서 발단된 모음기호를 집어넣은 것이다.

2. 대영박물관 사본(British Museum Oriental 4445)

이 사본은 모세오경이 기록되어 있으나, 창세기와 신명기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다. 원래는 자음으로만 기록되었었으며, A.D. 950년경에 속한 것으로 본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벤 아셀의 사본들 (Ben Asher Manuscripts)

구약 사본 작성에는 ‘벤 아셀’ 가문의 5-6대에 걸친 활동(8세기 후반∼10세기 중반)의 공이 컸다. 벤 아셀 가문은 티베리아(Tiberias)시를 본거지로 삼았던 맛소라 학파 활동(Masoretic Work)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모세 벤 아셀(Moses ben Asher)과 아론 벤 아셀(Aron ben Asher)이다.

1) 카이렌시스 사본(Codex Cairensis C)

이 사본은 A.D.895년에 모세 벤 아셀(Moses ben Asher)이 팔레스틴의 티베리아에서 기록된 것으로 전기.후기 예언서를 간직하고 있다. 이 사본은 처음에는 예루살렘의 카라이트 사람들(Karaite Community)이 가지고 있었는데,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와서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가 지금은 카이로에 있는 카라이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2) 알렙포회당 사본(The Aleppo Codex)

이 사본은 대체로 ‘아론 벤 아셀’(Aron ben Asher)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인정되고, 맛소라 사본으로 구약성서 전체를 담고 있다. 연대는 A.D. 930년경 솔로몬 벤 버야아(Soloman ben Buya’a)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알렙포(Aleppo)회당에 불이 났을 때 사본의 1/4 정도가 소각되고 무사히 화를 면한 3/4 전도가 이스라엘로 옮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예언서만 남아 있다.

3) 레닌그란드 사본(Codex Leningradensis L)

‘벤 아셀’ 가문의 마지막 사람에 유래된 구약성서 전체가 완전하게 기록된 사본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 사본은 Aron ben Asher과 Moses ben Asher이 기록한 모범적 사본 (exemplars)들로부터 A.D. 1008년에 복사한 것으로 ‘벤아셀’ 맛소라 사본을 대표한다. 이 사본은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MS B-19A)혹은 ‘모세 벤아셀의 사본 (Codex of Moses ben Asher)이라고도 하고, 키텔의 히브리어 성경(Kittel’s Biblia Hebraica)의 기초가 되어 오늘날 성서학자들의 표준 사본으로 사용된다. 레닌그라드 사본 (Leningrad B-19)이라 부르는 이유는 오늘날 소련의레닌그라드 시의 공공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본격화되면서, 히브리어 구약본문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사이에 인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초의 인쇄본 구약은 1488년 이탈리아의 손시노(Soncino)에서 나온 것이다.

제6장 구약성서의 본문 전승

구약의 원본 (Original Text)들은 그 성서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후 1-2세기가 지나면서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성서는 그 원본에서 손으로 다시 기록한 사본의 사본들이다. 이런 성서의 전승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학파들이 있었기에 본문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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