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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 <20><제4편>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주역들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8.05 17:21
  • 호수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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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명 목사

2020년을 맞이하여 창립 제114년차가 된 한국성결교회에 대하여 기독교헤럴드가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교훈삼아 연재한다.

제2절 초기 해외선교 사업

일본선교와 교회해산 명령

한국성결교회는 동 만주지역에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선교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의 선교를 모색하게 된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의 백성들은 조선밖에 모르고 외국나들이는 전혀 없었고, 외국문화도 또한 모르는 상태에서 농사일에 전념하고 살아왔다.

1882년 ‘한·일 통상조약’을 맺은 후 일본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고, 청년과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하게 되어 일본에 한국 유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일본 선교를 시작한 한국 Y.M.C.A

이런 현실이 나오자 1907년 한국 Y.M.C.A 에서는 부총무로 일하던 김정식 씨를 일본 동경으로 파송하여,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모아 ‘재일한국기독청년회’를 조직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 때 한국유학생들은 주일마다 Y.M.C.A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며 신앙 활동을 하게 되었고, 교회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한국장로교회 ‘독노회’에서 1909년 10월에 한석진 목사를 동경으로 파송하여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교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최초 일본에서 한인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그 뒤 감리회가 일본선교에 가담하여 장로교회와 협력하면서, 1927년에는 동경뿐만 아니라 오사카, 고베, 나고야, 교토, 나라 등 큰 도시에 한인교회를 설립하면서 부흥하게 되었는데, 1933년에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선교목사 9명, 전도사 7명이나 되었으며, 교회당 46개와 신자 2,414명의 통계가 잡혔다.

한국성결교회 일본 진출

한국성결교회의 일본선교는 1927년 ‘동경성서학원’ 졸업생 윤낙영 목사가 앞장서 ‘동경성결교회’를 설립하고, 3년 동안 열심히 포교활동을 하여 ‘풍교지교회’를 개척하는 등 신자 160명으로 크게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다.

‘동경성결교회’에는 한국에서 박현명 목사가 새로 부임하게 되고, 교회가 날로 부흥하게 되어 교회건물도 새로 신축하게 되었으며, 윤낙연 목사도 ‘풍교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3개의 기도처와 1930년에는 ‘대판교회’와 ‘나고야교회’를 개척하여 한국성결교회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일본의 교회박해와 예배탄압

1937년 12월에는 최익수 목사가 ‘광도교회’를 개척하는 등 일본에서 한국성결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을 때 일.지.사.변(日支事變)이 일어나 교회에 박해를 가해오면서, 1943년 4월 7일 ‘한국성결교회’ 해산명령과 예배중지를 당하게 되고, 19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이 패전으로 유엔군에 항복하면서 일본은 교회를 모두 파괴시켰다.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에서 복구된 교회는 겨우 ‘대판교회’와 ‘광도교회’ 그리고 ‘동경신숙교회’ 뿐이고, 한국성결교회는 허탈하게 되어 버렸으나, 그래도 교회복구를 위해 헌신의 수고를 하신 분들이 있으니, 한성과, 김창근, 황경찬, 최 헌, 김현준, 최학철, 천순봉 목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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