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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 (1)정빈편-한국성결교회 창립자 정빈의 생애와 사상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7.08 17:39
  • 호수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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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 성결대 5-6대 총장  성결대 교수

Ⅰ. 여는 글

동양선교회(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 약칭하여 O.M.S)의 창립자인 카우만(C. E. Cowman)과 킬보른(E. A. Kilbourne)은 극동 지방에 선교할 목적으로 1901년에 일본 동경에 선교 단체를 만들어 그 뜻을 펴기 시작했다.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이사회에서 출간한 『성결교회 임시약법(聖潔敎會 臨時約法)」(1933년)에서는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 선교회는 주강생 1901년 2월에 하나님의 명백한 사명과 성신의 지시하심을 받아 일어난 단체인데, 그 목적은 동양 모든 나라에 순복음(純福音)을 전하고자 함이라.”

동양선교회는 선교 정책 및 방법에 있어서 토착민 전도자 양성을 주로 하여 양성된 전도자들을 전도에 직접 종사하게 하였고, 설립된 교회는 자립 자급하도록 유도하여 후원하였다 동양선교회의 주한 선교부 실행위원회 Everett N. Hunt는 O.M.S.의 3가지 기본 계획을 “1.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한다. 2. 피선교지 국민을 교역자로 훈련한다. 3. 피선교지 국민 스스로의 교회를 설립케 한다.”로 설명한다.

이같은 선교 정책의 일환으로 1901년 동경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세우고 이듬해인 1902년에 동경성서학원(Tokyo Bible Training Institute)을 개설하여 일본 전역에서 선교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동양선교회가 일본에서 미처 눈을 떼기도 전인 1907년 5월 30일 구한 말 주변 열강의 횡포로 날로 쇠약해져 가는 암울한 조선 땅에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정빈(鄭彬), 김상준(金相濬) 두 한국 젊은이에 의해 한국성결교회가 태동하게 되었다.

동양선교회에서 한국에 초대 감독으로 파송한 외국선교사인 영국인 토마스(John Thomas) 목사는 이미 진남포(鎭南浦) 전도관(1908년), 개성 전도관(1909년)이 설립된 후인 1910년 4월에 조선에 부임하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 창립의 주역을 맡아 사역하다가 무명의 전도자로 생을 마친 복음의 선구자 정빈, 그는 한국성결교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도 그 동안 사료의 빈곤이나 연구의 무관심으로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아쉽게도 뚜렷한 글로 표명된 것이 없었다. 다만 1987년 필자의 글이 논문으로 발표되기 이전에는 이명직 목사의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약사』(1929년, 이하 약사로 줄임)와 『기독교 대백과 사전』(13권)에 간단히 몇 줄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 전부이었다.

II. 정빈의 생애

1. 성장과 입신

정빈은 1871년 척화비(斥和碑)가 이 땅에 세워지고 신미양요(辛未洋擾)의 여파로 인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계속 심화되어 가는 중인 1873년경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태어났다. 정빈의 출생지와 달리 출생 연도는 지금까지 미상(未詳)으로 산정 불가한 부분이었다. 정빈이 1873년경 출생한 것에 대한 근거는 동아 기독교(동아 기독대, 현 침례교) 총부에서 매월 개교회로 보냈던 교단 기관지 성격을 띤 월보인 『달편지』(1936년 3월 17일)의 내용 즉, “소생은 행년 육십 여세에 온전히 아는 바는 오직 하나 뿐이요, 슘님(성령님) 안으로 과거 삼십 년간을 돌아보아.”라는 글을 바탕으로 산정한 결과이다. 그는 8세부터 서당에 들어가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자기 적성에 맞는 대로 외국어와 산술, 그리고 또 다른 학문까지 익히기 시작했다. 정빈은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의가 있어서 신학문을 습득하는 데도 열심을 다하여 주력하였다. 『달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8세부터 입학하여 한문으로 시작하고 산술과 또 다른 학술까지 연구하고 자나 깨나 이것들에게 종사하여 왔으되”

동기는 확실히 모르나 그는 나이어린 10살쯤에 이미 기독교로 입신하게 되어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였다. 정빈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는 1893년에 선교사 모삼열(牟三 Moore)과 조사(助事) 김영옥(金泳玉), 천광실(千光實)의 전도로 인해 그 이듬해에 세워진 연동(蓮洞)교회의 청년 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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