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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 <18><제4편>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 주역들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7.08 15:35
  • 호수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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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직 목사

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로 하여 연재한다.

제2절 초기 해외선교 사업

만주 지방 용정교회 개척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그 대상이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살고 있는 각 나라의 민족이 대상이기 때문에 교회의 사명은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고, 한국교회도 출발은 늦었지만 세계선교에 눈뜨기 시작했다.

한국 장로교회는 1907년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12년 총회결의로 중국선교를 결의했으며, 주된 해외선교 사업은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교포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 말에는 중국, 만주, 시베리아, 일본 등지에 100만여 명이 넘는 교포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1909년에는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사 파송을 하게 된다.

한국감리교회에서 1912년에 선교사 파송과 해외교회 설립을 시작하여 만주 지방 북간도와 서간도에 집중하였고, 한국 선교사들은 1920년경 중국 내 교회 34개, 기도처 109개, 목사 7명, 주일학교 33개소, 소학교 22개, 성경학교 1곳 그리고 전도한 교인 등록 수가 3,327명의 성과를 이루게 된다.

용정성결교회 담임 이정원 전도자 파송

이런 교세 확장을 이룩할 무렵 늦은 감이 있으나 한국성결교회도 1925년 3월경부터 만주선교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이정원 선교사를 파송하고, 동만주 용정지역에 성결교회를 처음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성결교회가 해외에서 개척한 최초 지교회가 된 것이다.

중국 만주 땅 용정에 성결교회를 개척하게 된 동기는 충남 부여군 옛 바위 교회에서 용정으로 이사한 박기래와 경주교회에서 이사한 박장환 과 한치국 등 3명이 용정지역 한국인 교포 30여 명을 모아서 예배를 드리다가 ‘동양선교회’로 부터 시찰 나온 최석모 목사를 만나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다.

1925년 한국에서는 제2회 한국성결교회 교역자총회를 개최하여, 용정교회를 시찰하고 돌아온 최석모 목사로부터 선교 보고를 듣게 되었다.

교단총회 이사회가 즉시 용정으로 이정원 전도자를 파송하여 담임으로 결정하고, 당년 4월부터 정식예배를 드리기로 결의했다.

한국성결교회는 그해 7월 모금을 통해 모아진 헌금 800원을 만주로 보내 용정교회 예배처소를 구입하게 했으며, 용정교회가 부흥하여 6년 후에는 성도가 많아져서 예배 장소가 좁아서 한국본부에 청원하여 또 다시 1,180원을 보조받고, 현지 교인들이 헌금한 100원을 포함해서 총공사비 1,326원으로 새 예배당을 건축하게 된다.

만주의 용정성결교회는 1931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이명직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성전봉헌식과 심령대부흥회를 개최하였는데, 매번 집회 시간마다 약 400여 명의 성도가 운집하여 은혜를 받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회가 부흥하게 되자 인근에 있는 천보산 근처에 지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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