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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 6·25 ‘참전용사 초청 기념 감사예배’2012년부터 지금까지 407명 발굴해 감사패·격려금 전달
  • 여의도순복음교회 홍보국 제공
  • 승인 2020.06.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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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24일 대성전에서 ‘제70주년 6·25전쟁 참전용사 초청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자 지난 2012년 처음으로 204명에게 감사패와 격려금을 전달했고 지금까지 모두 407명의 참전용사들을 찾아내 이들의 헌신과 노고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리를 가져왔다. 70주년인 올해 감사예배에도 이들 중 74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예배에서는 최우병 성도(90세)가 처음으로 감사패를 수상했다. 최 성도는 당시 19세의 나이로 전쟁터에 나가 여러 전투에 참전한 뒤 제대했으며 2006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입교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왔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사선의 현장을 목격한 아픔을 지닌 채 육신마저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평생 불편한 삶을 살아온 참전용사들을 뵈면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면서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한 이분들의 헌신을 후대가 반드시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궁극적으로 이들에 대한 보답은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며, 남과 북의 진정한 평화통일은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실현되는 복음통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규 감사패 수상자 ‘최우병 성도’

올해 90세인 최우병 성도는 1950년 전쟁이 났을 때 아직 약관의 나이에도 못 미친 19세 어린 나이였으나 3·1 만세운동 당시 서울에서 독립단장으로 투신한 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주저 없이 군에 자원 입대해 야전전투공병단에서 통신병으로 참전했다. 전방에 투입되어 끊어진 다리를 잇고 길을 만들었다.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많은 전우를 잃었고 수류탄 파편이 튀어 부상을 입었으며, 폭격을 맞아 강으로 떨어질 뻔도 했다.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정전을 앞두고 강원도 양구에서 있었던 전투에는 중공군과 인민군에 맞서 국군과 유엔군이 치열하게 싸웠다. 휴전 후 1년 6개월 동안 육군본부 통신감실에서 근무하고 일등중사로 제대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전쟁의 아픔을 잘 몰라요.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지 바로 알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힘겹게 찾아낸 자유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모두 힘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최 성도는 2006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입교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왔다.

● 김용진 연로장로

김용진 연로장로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까지 후퇴하는 긴급상황에 17세 소년병으로 입대했다. 기초군사훈련도 없이 입대하자마자 소총 한 자루와 담요 한 장을 보급받아 전쟁터에 투입되어 사격술도 전쟁을 하며 배웠다. 동부전선 전투의 기억은 생생하다. 소나무가 울창한 산에 폭격이 그치지 않았고 한바탕 전투가 휩쓸고 지나면 소나무 잎들만 남아 있었다. 살아남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파편이 다리에 박힌 줄도 모르고 전쟁터를 뛰어다니다 복귀해 다리에 흥건한 피를 보고서야 부상을 알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전장에서 두렵고 힘들 때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도 살아올 수 있게 보호해주소서.’ 휴전 후 1년 6개월 복무한 뒤 중사로 전역했다. 김 장로는 “청년들이 미워해야 할 것은 공산주의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북한 동포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납해야 한다. 그러면 통일은 물론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 박옥선 집사

‘6·25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인 박옥선 집사는 1951년 4월 17세의 여고생으로 입대해 간호장교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휴전 후에는 중앙보훈병원에서 간호과장으로 월남전 부상 군인들을 돌본 뒤 18년 군생활을 마치고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전쟁 부상으로 육체적 경제적으로 어려움 겪는 참전용사들 가까이서 섬겼다. 전쟁 중이라 약품도 부족하던 그때 박 집사는 매일 새벽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생사를 오가던 부상병들이 기적처럼 살아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흘렀으나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평화를 위해, 남북이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전쟁은 살상 강탈 파괴의 다른 말이다.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이 없기를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 임순영 집사

이맘 때만 되면 먼저 떠난 전우들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임순영 집사. 그렇게 많은 생명들을 바치고도 통일이 안 된 게 아쉽기만 하다. 올해 88세인 그는 1953년 21세에 군 입대해 52개월 복무했다. 살벌한 훈련을 받고 전방에 배치됐을 때 휴전 소식을 들었다. 그 후 건설공병단 소속으로 재건사업에 투입됐다. 폐허가 된 나라의 참혹함을 보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깨달았다. 30년 전 아내의 인도로 교회에 나왔다. 올해 4월에 15년간 뇌출혈 후유증을 앓은 아내가 먼저 하나님께로 떠났다. 다행히 1남 2녀가 모두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의 가정을 이뤘다. 그는 “우리 모두가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하지만 이 땅에 있을 때는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사명을 받았고, 그래서 총이 아닌 복음으로 통일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홍보국 제공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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