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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13)구약성서의 원본과 사본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0.06.26 11:30
  • 호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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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진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제13대 총장

                                         서울신학대 신학과 명예교수

트레버(J.C. Trever) 박사는 브라운리(W.H.Brownlee) 교수와 더불어 이사야 사본을 즉시 사진판으로 하여 그들의 스승인 미국의 올브라이트(W.F. Albright) 박사에게 보냈다. 올브라이트 교수는 “현대에서 가장 위대한 사본의 발견에 대해 가슴 깊이 축하한다. 나의 판단에 의하면 이 사본은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 사본보다 훨씬 고대에 속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그의 입장을 밝히고, 그 회신이 예루살렘 동양연구소에 1948년 3월 15일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미국 동양연구소의 책임자였던 버로우스(Millar Burrows)가 의견을 같이하여 1948년 4월 11일 처음으로 사해사본의 발견과 그 가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다른 경로로, 쿰란 제1 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사본 1Q Isa (주로 38~66장 부분) 빛의 자녀와 어둠 자녀들의 싸움(1QM), 감사의 노래(1QH)가 수케닉(Eliezer Lipa Sukenik)교수의 손으로 들어갔다. 구입하게 된 경로는 다음과 같다.

1947년 11월 23일 아침 히브리대학교의 수케닉 교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시에는 구 예루살렘(아랍인 지역)과 신(新) 예루살렘(유대인 지역)으로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전화는 구(舊) 예루살렘 지역에 있는 한 골동품상이 급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는 수케닉 교수에게 철조망 너머로 히브리어로 쓰인 양피지 3개를 그 가치를 확인한 다음 사라져 버렸다. 수케닉 교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베들레험에 가서 그 문서를 구입했다. 수케닉 교수가 위의 사본을 구입한 2개월여가 지난 뒤 또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4개의 두루마리 책을 갖고 있다는 사람의 전화였다. 그가 수케닉 교수에게 가져온 것은 틀림없는 ‘사해사본’이었다. 고고학자인 수케닉 교수가 사겠다고 했으나 그는 문서를 가지고 잠적해 버리고 1953년 수케닉 교수는 사망했다. 사무엘 대주교는 수케닉 교수와 트레버 박사, 올브라이트 교수 등의 감정에 의해 귀중한 책임을 확인하자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미국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수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1954년까지 팔 수가 없었다.

수케닉 교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국방군(하가나) 총사령관이었다가 전역하여 고고학자 되었던 이갈 야단이 1954년 학술 강연차 미국에 갔다가 그의 아버지가 사지 못했던 4개의 사해문서가 아직 팔리지 않음을 알고 미국인을 중간에 내세워 25만 달러로 흥정했다. 그는 급히 이스라엘 수상에게 전보를 쳐서 회답을 얻어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지불 보증함. 돈을 마련해 꼭 살 것’ 그래서 그가 4개의 두루마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아버지가 구입한 3서들은 예루살렘의 사해문서 박물관인 ‘책의 전당’(Shrine of the Book)에 보존되어 있다.

1949년 2월 15일에서 5월 5일 사이에 동굴의 과학적인 본격 발굴이 요르단 정부의 고대 문화부의 지엘 하-딩(G.L.Harding)과, 불란서의 도미니카 신부 도보(Roland de Vaux)에 의해 이뤄져서 제1 동굴을 중심으로 하여 무수한 ‘독’의 단편과 사본의 단편들 수백을 발견하였다. 이런 초기의 발굴과 더불어 1951년에는 쿰란의 남서쪽으로 11마일 지경의 ‘와디 무랍바이드’(Wadi Murabba at)에서도 다른 문자(Simon Bar-Kokhba)들과 파피루스들이 발견되었다. 초기 발굴에 이어서 고고학의 세계적 권위자들의 도움을 얻은 노력과 여기에 사본들이 비싸게 팔리는 것을 알게 된 아랍 사람들, 즉 베드윈 족속들의 경제적 수입 목표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한 철저한 발굴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1961년 8월까지 22개의 동굴에서 수많은 사본과 유물들을 발굴했다. 이들 중에 중요한 문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 사본의 내용

이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간혹 구리와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이 있으나 대개 거의 전부가 가죽 두루마리에 쓰였고 질그릇 항아리 등에 넣어 굴속에 숨겨 두었다. 이 사본들은 히브리말로 대개 기록되었으나, 어떤 것은 아랍어, 헬라어, 라틴어 심지어 아라비아어로 기록된 문서도 있다. 에스더를 제외한 모든 구약책이 다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사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완전한 형태의 두루마리이거나 단편뿐이다.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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