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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10)한국교회가 나서서 정리 정돈하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25 14:07
  • 호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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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기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예수말씀연구소 소장)

Q 11:25 그런데 그가 와서 그것이 청소되고 정돈된 것을 보았다.

Q 11:26 그때 그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 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들어가 거기에 거하였다. 그러면 그 사람의 마지막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된다.

결단코 마귀는 도깨비처럼 얼굴이 붉고 머리에 뿔이 달린 짐승이 아니다. 사람과 성정이 똑같아서 사람과 같이 살기를 원하는 속성이 있다. 나사렛 예수님의 토라는 오늘의 말씀에서 난해한 구절이 있는데, 마귀는 스스로 청소하고 정돈할 줄 모른다. 청소와 정돈은 집주인 몫이다.

마귀도 사람처럼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돈된 것을 보면 다시 들어와 살고 싶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귀의 속성상 잘 청소되고 정돈된 집을 이내 더러워지게 만든다. 사람과는 달리, 마귀는 청소와 정돈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탄의 생태를 ‘코로나 19’ 급성폐렴에 적용해보면, 예수님의 토라가 지닌 난해 한 구절이 풀린다. 천만 인구가 살던 중국의 우한시에 수천 명이 희생당하여 시체가 쌓이고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필자가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우한시에서 희생된 사람을 고의 적으로 누락시킨 잘못을 지적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국가의 무책임한 재난 방치로 인해 죽은 수많은 희생자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상에 전염병이 창궐해지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집주인이 나서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해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온 곳마다 폐쇄하고 소독할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한다.

악한 영도 사람처럼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돈된 곳’을 좋아한다. 또한 악한 영이 깨끗한 곳을 찾으면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 와서 함께 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악한 영은 사람과는 달리 스스로 청소하고, 정돈하지 못한다. 집주인이 청소와 정돈을 해 놓으면 그 때 슬그머니 들어와서 차지하려고 할 뿐이다.

악한 영들은 자기는 온갖 것에 더러우면서, 정작 그 깨끗하지 못한 영이 원하는 곳은 깨끗한 곳이다. 그런데 그 악한 영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더러워졌을 때, 마귀도 더는 그 더러운 곳에 살 수가 없어서 떠난다.

그리고 쉴만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물 없는 곳에서 살 수가 없어, 다시 찾아보니 원래 있었던 그 사람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리 정돈된 것을 보고 일곱 영과 함께 거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코로나 19’ 급성 폐렴이 전 세계를 강타할 때,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발견된다. 폐쇄된 공간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는 일이다. 전염병이 스스로 청소하고 정돈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집주인이 한 일이다. 마귀는 스스로 청소하고 정돈하지 못한다. 남이 깨끗하게 해 놓으면 다시 들어가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 혼자만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곱 영과 함께 다시 간다. 이런 마귀의 속성을 간파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면 그 사람의 마지막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된다”라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정신 차려야 한다.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누가복음 8:31에 무덤 사이를 배회하는 귀신들린 자가 자기를 ‘지옥’에 보내지 말라고 예수님께 간청한다. 지옥이야 마귀의 안방인데, 왜 지옥으로 보내지 말라고 할까? 흔히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곳으로만 상상하지만, 그 정반대로 지옥은 깊은 물이 있는 심연이다. 히브리어에서 태홈은 귀신이 가기 싫어하는 깊은 물이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에서 귀신은 ‘물 없는 곳’을 찾아다닌다. 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돌아갈 때, 에돔 땅에서 아모이 왕 시혼에게 간청을 한다. 이때 모세는 도성 헤스본에 사신을 보내어 밭이나 포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왕의 대로’만 가겠다고 허락을 구하지만, 거부되어 광야로 나와서 아하스에 진을 친다.(민 21:21-23)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르단을 가면 헤스본을 지나쳐 가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작정하고 빠른 순례 길로 헤스본 성 위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도 양들이 다 허물어진 헤스본 성의 그 옛길을 마실 물이 없으니 그냥 스처 지나가기에 바쁘다.

예수님의 토라가 보여주는 이런 가르침은 깨끗하지 않은 영이 쫓겨나는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회복되는 곳에 마귀는 더이상 머물지 못한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19’ 전염병에 지친 환자와 보호자를 찾아서 가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고 소독도 해주면서 솔선하여 상처를 싸매어 주어야 한다. 깨끗지 않은 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백신인 복음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다시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서 대전에까지 제2의 팬데믹 상황으로 번지고 있는 한국교회는 이웃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고, 환자와 가족을 위해 교회 재정을 활용해야 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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