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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성장사 <17><제4편> 성결교회 성장과 활동주역들
  • (주)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24 16:17
  • 호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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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 창립 제114년차가 도래하는 2020년을 맞이하여 기독교헤럴드에서는 성결복음의 역사에 대한 기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자 안수훈 목사 저서를 기초로 하여 연재한다.

4. ‘경성성서학원’출신 목회자들의 활약(5)

일곱 번째 이성봉 전도자는 1900년 7월 4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이인실의 맏아들로 태어나 6살부터 가족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듯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1920년 6월경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된 때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에 만취되어 평양 거리를 걷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3년 동안이나 병에 시달리게 된다.

와병 중에 있으면서 회개하고 중생하여 몸을 추스르게 되자 1925년 3월에는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고 1928년에 졸업하게 되며, 그해 바로 수원으로 가서 ‘수원교회’를 개척하여 부흥시키고 교회당을 건축하게 된다.

1930년 ‘목포교회’에 부임하고, ‘동안교회’를 건축한 것과 1936년 목사안수를 받은 다음 곧바로 ‘신의주교회’에 부임하여 시무하면서 뜨거운 성령체험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1936년부터 동양선교회로부터 전국 순회부흥사로 임명받아 전국을 순회하면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으며, 193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예수 구원을 외치는 집회를 인도했다.

1941년부터 ‘만주 지방 순회 집회’를 인도하면서 전도하다가 1945년 조국의 해방을 맞아 북한으로 넘어와서 북한 지방에 이미 설립된 성결교회 재건을 위하여 순회 전도를 하게 된다.

1946년 남한으로 월남하여 성결교회 교단 재건에 힘쓰게 되면서,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 집회를 추진하였고, 1954년에는 ‘임마누엘 통곡대’를 조직하여 약한 교회를 돕는 일에 주력했으며, 1955년에는 서울에 와서 ‘신촌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에 전력하였는바,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성결교회의 중심역할을 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됐다.

한국성결교회 창립 희년 기념 1천 교회 운동을 주도하면서, 전국 순회부흥회를 하였고,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 지역 순회부흥회와 1959년 교단창립 ‘희년 전도대’ 대장으로 추대되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역별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961년 9월부터는 전국에서 1일 1 교회 집회를 인도하면서 1963년 2월까지 408개 교회를 순회부흥회로 인도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65년 5월 교단합동총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그해 8월 2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나라로 소천했다.

그가 1936년 부흥사로 임명받아 죽을 때까지 ‘한국성결교회 부흥사’로 일생을 바쳐 충성한 종으로 한국교회에 초교파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성봉 목사 이후로는 교단발전을 위해 지역별 감독으로 또는 감리사 역할을 하신 전국에 목사님들이 많이 있음을 알려드리며, 일일이 명부를 공개하지 못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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