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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순교자 이태석 목사(평양 1901~1950)교회폐쇄에 저항하다 회개하라! 외치고 순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6.18 13:38
  • 호수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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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관장/본지 논설위원

순교자 이태석은 평양에서 출생했으며, 1919년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때 서울 경신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8세의 이태석 군이 있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에 편입하여 수학하던 21세 되던 해에 다시 학생의열단을 조직하여 독립을 위한 지하운동을 벌이다가 황해도 해주 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국내에서 학교를 더 다닐 수 없게 되자 일본 유학의 길을 찾아 건너가서 고학하며 동경 중앙대학 예과를 거쳐 갖은 어려움 끝에 상과를 졸업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목회에 뜻을 두고 현재의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이었던 당시 경성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931년 신학생으로 충청남도 금산교회에 목회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순교자 이태석 목사

이태석은 1932년에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1933년 강경교회 1934년에는 군산 중앙성결교회에서 사역하다가 평양의 상수리교회에 부임하고 일본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다. 이후 ‘하나님의 교회’ 교단으로 옮긴다. 한편 이때가 성결교의 조직기로서 1933년 제1회 총회를 개최하여 박현명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함으로 성결교단의 조직이 완전히 정비되었다.

이태석 목사는 상수리교회에서 1945년 광복을 맞이한다. 이후 평양 산양리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1950년 전쟁이 발발한다. 이때 교회폐쇄를 항의하다가 공산당에게 끌려가 평촌 야구장에서 총살되었다. 다음 날 10월 21일, 50여 구의 시체가 뒤엉켜 매몰되어 있는 야구장 한 모퉁이 방공호 속에서 사살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태석 목사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가슴과 어깨에 총탄을 맞고 몸은 쇠줄로 묶인 채 눕혀져 있었다. 납치 인사들을 한데 몰아넣고 이들을 살해한 것이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김일성 장군 만세’와 ‘북조선 인민군 만세’, 를 외치게 하고, 외치는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 주고 이 외침을 거절하는 자들, 대부분 기독교인을 사살했다고 한다. 이태석 목사는 공산당의 회유를 물리치고 최후까지 신앙을 지켰다.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공산당은 망한다. 회개하고 예수님 믿으라!” 외쳤다 한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여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기도하며 순교하였다. (한국기독공보 1984년 7월 21일) 순교자 이태석 목사의 장례예식은 평양 서문 밖에서 거행했다. 이태석 목사가 즐겨 부르던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낙원 있네.”라는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평양 근처 돌박산 기독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순교자였다.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큰아들을 잃은 김송희 사모는 남은 두 아들 승만과 승규에게 잠시 집을 떠나 피난을 갔다가 난리가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고 강권했다. 1950년 12월 3일 주일 아침, 두 아들을 떠나게 했다. 당시 큰딸 경신은 14살, 둘째 딸 경옥은 10살, 셋째 딸 경주는 8살, 넷째 딸 경복은 생후 6개월의 아기였다. 김송희 사모는 “너희들이 이제 떠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고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만나자 말했다.” 이렇게 두 아들을 떠나보낸 김송희 사모는 이 땅에서 두 아들을 영영 보지 못했다. 두 아들은 월남하여 차남 이승만은 아버지를 이어 목사로 헌신하여 마틴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에 동참했으며, 미국 NCC 회장으로 있으면서 80년 초부터 남북을 23회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다. 삼남 이승규는 1951년 1월 해병대 6기로 참전하였고 롯데상사 대표이사, 고려인삼 대표이사 등 경제계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전에서 원로장로로 순교적 신앙을 전하는 전도자로 충성하고 있다.

 
용인순교자기념관 뜰에 세워진 순교비석과 아들 이승규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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