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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15)육호기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
  • 최 선 박사(Ph.D., Th.D.)
  • 승인 2020.05.28 18:20
  • 호수 483
  • 댓글 0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선교사로써 교회 개척과 영혼구원을 위해 50여년을 걸어 오셨고,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십자가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선교단체와 애국운동, 샬롬나비, 신학대학교, 학회 등 다양한 사역을 하시는 육호기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해방 전 1945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개심리 가난한 빈농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하였지만 부모님의 기독교 신앙 안에서 매일 가정예배로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했다.

그 당시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하여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상급학교로 진급하지 않고 농사일을 돕는 농부가 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 교장 선생님이 대전에 있는 어느 중학교 입학원서 가지고 오셔서 모든 서류를 제출하셨다며 그에게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교 전체의 자랑감이 되었지만 두메산골 가난한 농촌 집에서 어떻게 등록금을 내며 과연 공부를 시키겠는가? 어린 그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늘 말씀하신 대로 “호기, 네 생애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곧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안은 아들을 공부시키느라 얼마 안 되는 논밭 다 팔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미사리)으로 이사했다.

어느 날 담임목사가 한강 상류 지류인 강 건너(지금의 조정 경기장)편에 기도처로 있던 작은 풍산교회에서 담임전도사로 사역을 하라고 하시면서 당시 한남노회에서 전도사 고시를 시취하게 했다, 또한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 입학원서를 가지고 오셔서 총신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라고 하면서 입학하면 교회에서 등록금 일체를 마련하겠다고 하셔서 그대로 순종했다.

육호기 선교사는 신학교에 다니면서 1966년 9월에 화전중앙교회(현, 항공대학교 앞)를 개척하였고 총신대학교와 신대원을 졸업하고도 계속 1969년 12월에 군입대할 때까지 화전중앙교회를 시무했다. 1969년 12월에 군에 입대하여 훈련마치고 오산 비행장에 있는 방공포사령부에서 군인교회를 섬기면서 평택제일교회도 시무했다. 1972년도에 전역을 하고 곧바로 평택제일교회에서 위임목사로 목회하였으며, 1976년 12월에 서울 충현교회(고 김창인 목사) 후원으로, 총회가 파송하는 유럽 1호 독일선교사(GMS소속)가 되었다.

육 선교사는 1977년 5월 25일 비스바덴한인교회를 개척하여 19년간 시무하였으며, 1978년 5월 3일 뷔르츠부르크 한인교회 개척 13년간 시무하고, 1978년 5월 하나누 한인교회 시무 17년간 시무하였다. 위 3곳의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시간을 11시, 오후 4시, 오후 7시로 정하고 주일에는 각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였고, 주 중에는 수, 목, 금요일 오후에 성경공부 하였으며, 절기 때에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는 세 교회가 한곳에서 연합예배로 드렸고, 수련회와 야유회를 년 1회 연합으로 행사를 가졌다.

개척한 한인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성장되자 세 교회가 연합하여 1982년 5월에 터키 이즈밀에 최초 서머나 한인교회와 터키현지인교회를 개척하여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1999년 10월에는 아프리카 브리키나파소에 두 곳 교회당 건축을 하여 헌당식을 가졌다.

1989년도부터는 구, 소련과 중국 그리고 동구권에 공산권 선교를 하면서 성경을 보급하는 사역도 하였으며, 1998년도 유럽예수교장로회총회를 설립하고 초대 총회장으로 교포 2세들 중에 현지 신학공부를 마친 이들에게 강도사와 목사고시를 시취하여 목사로 임직케 하고 현지인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활동을 하면 협조하기로 하였다.

또한 그는 학원선교사역에도 매진을 하였는데, 2001년 불가리아 개혁 신학교 이사와 교수로 사역을 하였고, 2007년-2010년 미주 칼빈성서신학대학 선교학 객원교수로, 2011년 6월 인도 켈카타 현지인 사랑의 교회에서 영어예배 설교자로 섬겼다. 아울러 2012년 10월-2016년 6월

인도 켈카타 로고스신학교 교장과 교수로 학원 선교사역을 감당하였으며, 2016년 9월-2018년 4월 필리핀 보홀에서 현지인 교회를 섬기며 설교자로 사역하였다.
육호기 선교사는 2019년 4월 미주 칼빈신학대학교 선교대학원 명예 대학원장과 2020년 4월 18일 칼빈국제학술원 선교대학원 원장으로 왕성하게 귀한 사역을 감당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고난과 시련이 연속되는 상황이 올 때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살아 보자.

육호기 선교사의 개척 정신과 오직 하나님을 믿는 불굴의 도전의식을 통해 우리 성도들은 가정과 직장, 사업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포기하거나 실망하여 주저앉아 있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일어나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해 주신 소중한 사명을 감당하며 생명의 복음을 전하자. <다음호에 계속>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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