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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14)"조선에 입국하여 생명과 열정 바친 선교사들"
  • 박지현 편집국장
  • 승인 2020.05.20 17:11
  • 호수 482
  • 댓글 0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한국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 역사, ‘한국 장로교회와 민족’이란 책에 보면 초기 국내에 입국한 선교사들을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지의 땅 조선에 입국하여 생명과 열정을 바쳐 복음의 씨앗을 뿌린지 13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분들의 사역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성장케 하였으며, 그 열매로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위에 우뚝 서 있어 선교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그 중 몇 사람을 소개한다.

■ 마산과 통영지역 선교에 힘썼던 앤드류 아담슨
앤드류 아담슨(Andrew Adamson, 손안로 1860-1915)은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출신 선교사이다. 1894년 조선에 파송되어 1914년까지 한국에 거류하였다. 그는 1895년 6월 부산 초량지부 선교관을 완공하였다. 
초량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여 울산, 양산, 함안, 의령, 고성지역으로 선교구역을 확장하고 통영과 거제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선교활동 지역을 넓혀 나갔다. 경남 마산 창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마산 및 통영에 선교부를 개설하였다. 이러한 그의 열정과 헌신으로 모두 2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아담슨 선교사는 1914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영국으로 간 다음해인 1915년 런던에서 소천했다.

■ 부산 최초의 여학교를 세운 벨 멘지스
벨 멘지스(Belle Menzies, 민지사 1856-1935)는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출신 선교사이다. 최초로 한반도에 도착한 여선교사 중 한사람으로 1891년 부산에 도착하였다. 1883년 버림받은 소녀들을 보살피고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 부산 지역 최초의 고아원인 미우라 고아원(Myoora Institute)을 설립했다. 이후에 미우라 고아원은 일신여학교로 발전하였고 초대 교장을 지냈다. 멘지스 선교사는 미혼의 몸으로 은퇴할 때까지 낮선 한국 땅에서 전도와 교육과 자선 사업에 헌신했다. 

■ 함경북도 지역에서 의료선교를 한 로버트 그리어슨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1868-1965)은 캐나다 장로교 출신 선교사이다. 그는 캐나다 핼리팩스 출생으로 1890년에 델하우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파인힐신학교를 거쳐 1897년 장로교신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인 1898년 캐나다장로회 초대 선교사로 파송됐다. 함경도 성진의 욱정교회 목사로 시무하면서, 제동병원을 창설하여 의료 활동에 전념하였고, 보신학교 등을 세웠다. 또한 성진을 본부로 삼아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 살고 있던 간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으로도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1934년까지 조선에서 사역하고 은퇴 후 196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 온 몸을 바친 헌신적인 선교사 월리엄 멕켄지
윌리엄 멕켄지(William John McKenzie 1861-1895)는 캐나다 장로교 출신 선교사이다. 캐나다 케임프 브레톤 출생으로 델하우지 대학교와 장로교 대학을 졸업하고 1893년 내한하였다. 그는 황해도 솔내에 정착하여 헌신적으로 선교하던 중 무리한 사역으로 몸이 몹시 쇠약해진 상태에서 장련읍 전도를 강행했다가 일사병에 걸렸고, 1895년 여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멕켄지 선교사는 1893년 10월에 내한하여 1895년 7월 23일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짧은 생이었지만, 한복에 한식을 먹으며 초가집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최초의 토착 자생교회인 소래교회의 건립을 독려하며 선교활동에 헌신했던 가장 한국적인 선교사였다. 멕켄지는 동학혁명 시기에 동학과의 차이를 표시하기 위해 소래교회 지붕 위에 '십자가'를 세웠으며, 이후 십자가는 한국 교회의 상징물이 되었다.
위에서 소개한 선교사들은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은 학교를 설립하여 지도자를 양성하였고, 교회를 설립하여 전도하였다. 그리고 고아원을 설립하여 약자들을 보살폈다. 선교사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얼마든지 육신적, 정서적으로 매우 편안한 사역과 삶의 질이 높은 생활들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머나먼 동방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 정착하여 다양한 선교를 펼쳤던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선교사로 소명을 받아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았던 모범적인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그 맡은 위치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초기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한국교회가 존재하고 성장하였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 선교사들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지현 편집국장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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