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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탐방/아현성결교회108년의 장자교회 ... 영성의 못자리
  • 하문수 대표기자
  • 승인 2020.05.14 14:37
  • 호수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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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근 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아현교회(조원근 목사)는 1913년 9월 7일 당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하던 강시영(姜時英), 김석준(金奭濬) 전도자가 전도와 목회실습을 위해, 서울시 마포구 애오개 언덕에 세워진 ‘경성성서학원’ 강당인 루디아채풀홀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강당교회로 시작하여 “죽첨정복음전도관(현 아현교회)”을 창립하였다.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 5월 30일 일본에서 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상준 과 정 빈 두 전도자가 서울 중구 무교동에 ‘동양선교회 경성복음전도관’을 세우고,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일본 동양선교회(OMS)소속 동경성서학원(감독 찰스 E. 카우만 선교사)의 교리와 정책을 이어 받아 ‘주의 재림을 앙망하는 신앙정신과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4중 교리에 따른 순수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체험적 간증을 전하는 집회를 원칙으로 했다.

‘경성복음전도관’을 설립한 김상준은 1881년 11월 11일 평안남도 용강군의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여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충실히 수학하였고, 효성이 극진하며 바르게 성장했다.

1901년 어느 날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평양 시내를 지나다, 기독교 전도자들의 노방전도 집회에서 복음을 듣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상투를 자르고, 제사를 거부하게 되면서 집안의 문중 어른들로부터 핍박과 회유를 받게 되고, 아버지로부터 멍석몰이 까지 받으면서 구박 당하지만 신앙의 뜻을 굽히지 안했다.

김상준은 마침내 1902년 부모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나까다 쥬지(中田重治)라는 일본 목사를 만나 신앙지도를 받게 되고, 그 길로 1905년 5월 일본에서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수학하면서 성결복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일본에서 정 빈과 동문수학하게 되는데, 한국인이라 외국에서 만나 더욱 친밀했고, 복음에 대한 비전이 같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정 빈은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가정에서 생활해오면서 기본이 잘된 신학도로 본받을 점이 많았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조국의 백성들에게 성결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뜻을 공유하고, 뜨거운 맘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열심히 공부도하고, 교리와 복음전도방법 또한 빠짐없이 꼼꼼하게 습득했다.

한국에 들어온 김상준과 정 빈은 1907년 5월 30일 서울시 중구 무교동 12번지에 ‘경성복음전도관(현 중앙교회)’을 설립하고, 길거리로 나가서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겸한 집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나,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본의 ’동경성서학원’과 같은 성서학원이 한국에도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의 동양선교회(OMS) 감독 촬스 E. 카우만 선교사로부터 영국인 존 토마스 선교사를 초대 동양선교회 한국감독으로 파송 받아, 1911년 3월 13일 서울 ‘무교정음복음전도관’내에 임시교사로 하는 ‘경성성서학원’을 개설하고, 10여명의 수강생을 모집하여 가르치게 된다.

존 토마스 선교사는 미국과 영국의 동양선교회 후원회에 통지하여 한국 ‘경성성서학원’ 건립을 위한 모금을 시작하였고, 그 모금을 바탕으로 1912년 3월에 서울시 마포구 애오개(현 충정로 3가 35번지)언덕에 교사를 신축하게 된다.

일본‘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한 이명헌 등 11명(여자 2명 포함)이 한국으로 돌아와 ‘경성성서학원’에 합류하게 되고, 새 교사로 이사하게 된 ‘경성성서학원’의 수강생들은 신바람이 나서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하고, 밤이면 성경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예배장소를 ‘경성성서학원’의 루디아채풀홀 강당에서 가지게 되었고, 이 강당에서의 예배모임을 ‘죽첨정복음전도관(현 아현교회)’이라 칭하게 되었다.

마침내 1913년 9월 7일 주일 창립예배를 들임으로써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내 에 정식 복음전도관(교회)이 설립되게 되었으며, 이날 첫 예배부터 성서학원학생들과 전도를 받은 구도자들이 모여 예배드리게 되었고, 당시 성서학원생이던 강시영, 김석준 두 사람에게 목회책임을 맡겼다.

현 아현교회 초대 주임교역자를 맡은 강시영 전도자는 1879년 7월 23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출생하였고, 강태온 목사의 6촌 조카이자 강 씨 문중의 사위였던 김상준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김상준 보다 두 살 아래이기에 더욱 친근한 사이였다.

김석준은 ‘경성성서학원’ 수강생이며, 강시영과 같은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1914년 2월 ‘경성성서학원’ 졸업과 동시에 이명직 목사를 따라 충청남도 부여 은산에 내려가 전도 집회를 하면서 1914년 8월 1일 은산교회를 개척한다.

독자적인 전도활동을 위해 김석준 과 강시영이 충청남도 부여로 떠나자 ‘죽첨정복음전도관’의 제2대 교역자로 김상준 목사가 1915년에 부임하고, 제3대 교역자로 ‘경성성서학원’교수인 이명직 목사가 1916년에 부임하였으며, 제4대 교역자로 ‘김천복음전도관’ 교역자였던 김준규 목사가 1920년 부임하게 된다.

한국성결교회가 1914년 4월 22일 주임목사제도를 신설하고, 최초로 목사안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은 김상준, 이장하, 강태온, 이명직, 이명헌 등 5명이었다.

‘죽첨정복음전도관(현 아현교회)’은 1929년 10월 남자집사 서근석, 권영상, 최영택, 이택, 신태영과 여자집사 이영희, 김정자, 서선자, 고순경, 마성초 등을 총 10명을 최초집사로 임명하여 교회직분 자를 세운다.

1921년 9월 교단의 면모를 갖추면서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개명하고, 전국에 있는 모든 전도관을 교회로 명칭을 개칭하게 되었으며, 1946년 10월 국가적인 행정구역 변경으로 교회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아현교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교단적으로 일제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43년 12월 29일 교단 해산명령을 받았고, 아현교회는 그 이전에 이미 ‘경성성서학원’과 함께 1943년 9월부터 예배폐지와 교회 출입금지명령을 받게 되는 치욕적인 수난을 격어야 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300여명이 ‘경성성서학원’ 강당에 모여 교단재흥예배를 드리고, 1945년 11월 9일 ‘교단재건위원회’ 발족과 동시에 박현명 목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목사, 전도사, 장로, 집사 등 대표 73명이 참여하는 ‘교단재흥선언서’를 발표하게 되며 “기독교조선성결교회재흥총회”를 개최한다.

1947년 4월 16일 교단 내 청년들이 아현교회에 모여 성결교회 청년연합회(성청)을 조직하고, 신공덕교회 윤판석 장로를 초대 성청회장으로 선출하고, 동년 8월에 대전여고 강당에서 제1회 성청전국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아현교회는 1955년 9월 18일 선명회 총재 밥 피얼스 박사에 의해 머릿돌을 놓고 2층 연건평 240평의 석조건물을 건축하였으며, 1956년 11월 10일 봉헌식을 하므로 애오개 마루턱에 웅장하게 서있는 서울신학교 본관과 아현교회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의 위상을 높이며 자랑이 되었다.

제14대 조원근 목사가 1991년 9월 8일 제14대 담임교역자로 부임한 후로 교세가 안정됨은 물론 교회가 부흥됨에 따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영적성장의 상징성을 간직한 장자교회로서 중심을 지키기 위한 사업으로 창립 100주년기념 성전건축을 준비하던 중 1997년에 교회부지 2,500평을 확보하게 된다.

교회창립 100주년기념 성전건축은 2011년 10월 23일 첫 삽을 뜨는 기공식을 시작으로, 2013년 9월 첫 주일 성전봉헌식 예배를 드리기까지 약 3년여 기간에 1,600여명이 동시에 예배들일 수 있는 대형예배당을 노아방주 외형으로 건축을 완료했다.

 

 

 

 

하문수 대표기자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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