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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탐방/은산성결교회교회설립 107년, 한국 성결교회 역사의 등대
  • 하문수 대표기자
  • 승인 2020.05.07 15:20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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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광동 목사(은산교회 담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은산교회(설광동 목사)는 1914년 8월 1일 당시 ‘동양선교회(O.M.S)’이사 이며 ‘경성성서학원’ 교사인 이명직 목사가 개척한 교회이다.
이에 대한 사연은 당시 ‘경성성서학원’ 학생인 박제원이 학칙에 따라 여름방학 기간 중에 부여 규암에 있는 김상기 씨(서울 묘동교회 교인)의 집에 유숙하면서 전도하게 되었는데, 이를 인연으로 복음전파에 적합한 지역으로 판단하고, ‘동양선교회’ 초대 한국 감독으로 서울에 와 있던 영국인 존 토마스(John Thomas)선교사와 협의하여 1912년 7월경 부여 규암에 ‘규암복음전도관’(현 규암성결교회)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1913년 10월경 ‘경성성서학원’의 어네스트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ne)미국인 선교사와 김상준, 이장하, 박제원 등이 ‘규암복음전도관’에 내려와 부흥 집회를 하고, 당시 ‘경성성서학원’ 교사였던 이명직 목사를 규암에 파송하게 된다.
이명직 목사는 규암지역 뿐만아니라, 규암에서 5km 떨어져 있는 은산면에서 열리는 5일장마다 장터에 모여드는 8,000여 명의 군중들을 찾아가서 4중 교리의 성결복음을 전하는 노상 집회를 하게 되었고, 이때 집회에 모여든 100여 명 중 김해두 씨 등 4명의 회심자가 나와 은산에도 ‘은산복음전도관’을 세울 수가 있었다.
이명직 목사는 1914년 10월경에 당시 돈 300엔을 들여 은산면에 건물을 매입하고 ‘은산복음전도관’ 예배처소로 사용하면서, 그동안 개인 집에서 드리던 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림과 동시에 김석준 전도자를 초대교역자로 은산에 파송한다.
당시 은산면은 지역의 교통중심지로서 ‘은산 별신굿’이 유명하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5일 장터인지라 많은 군중이 모여들고 있어서, 이미 한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구세군 등 교파들의 한국인 교역자들이 시내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특별히 은산은 미신을 섬기는 주민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고, 지역마다 푸닥거리하는 신당을 세워져 있고, 년 중 서너 번씩 대형 신 굿을 하면서,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제사와 축제 그리고 잔치의 지역 관습이 있다.
그렇기에 1914년 8월 1일 ‘은산복음전도관(현 은산성결교회)’은 남한에서 성결교회로 순수 한국토종 기독교 4번째로 설립되었으며, 악령과 싸움을 선포하는 것이고, 생활습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지역주민과 대대적인 마찰을 예고하는 것이었기에 성령 충만과 예수 부활의 복음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은산복음전도관’의 전도사역 또한 ‘동양선교회’와 ‘경성복음전도관’의 전도방침에 따라 타 교단의 전도 방식과 달리 노방전도와 축호전도, 가정심방, 4중복음 교리교육, 신앙생활수칙 등을 철저히 함으로 보수적인 신앙으로 기준을 삼았으며, 1924년 7월경 교단방침에 따라 ‘은산성결교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최초 한국 성결교회는 1907년 5월 30일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한 김상준 과 정 빈, 두 청년이 서울로 돌아와서 ‘경성복음전도관(현 중앙교회)’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다.
김상준은 평남 용강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 이여서 어릴 적부터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고 자라왔으나, 20세가 되던 어느 날 평양시장에 나갔는데, 노방에서 전도하는 전도자로부터 기독교 복음을 듣게 되었고, 이에 심취되어 즉각 머리 상투를 자르고 조상 대대로 이어온 유교의 제사를 거부하게 된다.
그 후 집안의 엄중한 회유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부지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전도자의 길을 걷기위해 1905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인 선교사 카우만(Charles E. Cowman)이 운영하는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였고, 이곳에서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신앙이 특심한 한국인 정 빈과 동문수학하게 된다.
그 뒤 1906년 미국 유학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평북 의주 출신 이장하가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게 되자 같이 수학하면서, 이들 3인은 진리를 깨닫게 되고, 성령의 임재와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한국에 돌아가서 확실한 성결의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중에 나이가 제일 적은 이장하는 미국 유학을 하였기에 영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은혜가 충만하여 찬송은사가 있어, 복음송 100여 곡을 번역하였고, 1907년 11월에는 복음송을 출판함으로써, 전국으로 나아가서 노방전도를 하는 ‘경성복음전도관’학생들이 복음송으로 대중들에게 부르게 하여 큰 은혜의 체험을 하게 했다.


이처럼 ‘은산성결교회’는 창립 107주년의 역사 속에서 복음전파 사역으로 주변에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고,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한 것은 물론, 교역자 80여 명과 장로 60여 명을 배출하는 등 한국 기독교사에 크게 이바지했다.
뿐만 아니라 ‘은산성결교회’는 손택구, 이병돈, 이강천, 조남국 목사 등 훌륭한 목회자들과 이진삼 장로(전 육군참모총장)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으며, 현재 담임으로 목회하고 있는 설광동 목사는 2003년 5월경에 부임하여, 성실한 목회를 하면서 현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충성하고 있다.
기독교헤럴드에서는 금년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4년차 총회’를 맞이하면서 교회설립 100주년 이상 된 ‘교회탐방 기획기사’ 추진에 따라 ‘은산성결교회’를 찾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바쁘신 일과 중에도 교회 역사를 자세하게 밝혀준 설광동 담임목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문수 대표기자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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